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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어디가 Sep 12. 2021

 이런 가을

일년에 한 번, 가장 멜랑콜리해지는 시기


최저기온이 0도 이하로 떨어졌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면서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기온이 급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급격히 센치해진다는 것이다. 봄에는 멀쩡한데 가을에 유독 그렇다.


특히 온도가 10도 이상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이 곳에선 감정의 변화도 다이나믹하다.

마침 지난주 내 인생에서 꽤 멍청한 짓을 저지른 후로 한동안 이 계절이 더 쓸쓸했더랬다. 그 쓸쓸함 앞에 무장해제되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들을 남겨본다.


퇴근 후, 공기가 행복한 느낌이라 처음으로 민족공원 산책코스를 한바퀴 다 돌았다.

서쪽 하늘에선 노을이, 다른 한쪽에서는 밤하늘에 총총 뜬 별을 볼 수 있었다.







코로나로 한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을 구하는게 어렵다고 (불쌍하게) 말했더니, 자비로우신 지연이 언니님께서 흔쾌히 냉면을 비롯한 레토르뜨 식품과 보드게임을 보내주셨다.

생각해보니 지연이 언니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지낸 모든 언니 중에 유일하게 말을 놓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듯.


얼마 뒤, 미레가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는데 같이 읽으면 좋겠다며 책을 보내줬다. 멜랑꼴리한 기분으로 출근했는데 책상위에 이 책들이 딱 올려져 있는것을 보고 우하하 웃음이 났다.


"글이란 내가 얼마나 구린지를 본격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용기를 내 자모를 맞추고 문장을 만들어 자신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중에서


와.. 너무 공감!

그리고 이렇게 대화(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아름다운 계절을 놓칠 수 없다.

 자연속으로 나가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하게도  도시에는 인적드문 멋진 자연들이 사방팔방에 펼쳐져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봐도봐도 질리지 않고 매번 새롭고 아름답다.


운동을 시작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도심 끝자락의 외딴 곳에서 소수의 인원이 수업을 하는데,

KF94 마스크를 끼고 달리니 폐활량이 두배로 빠르게 느는 것 같다.

매일매일 일취월장하여 팡팡 공을 날려보내고 싶은데 현실은 몸과 머리의 괴리에 매번 ic만 읊조리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니들펠트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다. 사람이 없어서 취소될 뻔 했으나 극적으로 1명이 더 신청하면서 클래스가 열렸다. 펠트 뭉치를 바늘로 계속 찌르면 펠트가 작고 단단해진다. 저 작은 공룡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본업은 의사이고 취미로 니들펠트를 만들고 SNS을 운영한다는 선생님이었다. 인생 재밌게 사는 분이 여기 또 계셨네.



이제 거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갓초르트.

따뜻한 햇살과 쌀쌀한 공기, 그리고 졸졸졸 흐르는 강물소리가 들린다. 이제 여기를 찾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강 건너편에 어린 양떼가 풀을 뜯으며 지나갔는데 저 양떼들 사이에 예수님만 있으면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머릿속 생각이 다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신기방기




"인생이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어떤 찰나도 아쉬움 혹은 미련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나의 소소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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