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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Nov 04. 2021

바느질 장인의 탄생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바느질 장인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만 소비하고, 적게 쓰고 적게 버리는 삶을 지향한다. 서랍 속 물건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좋아하고 물건이 사라진 다음엔 그 물건을 담은 가구가 사라지는 게 좋다. 뭐든 최소한으로 구입해 살았건만, 유부를 만나고 내 한계를 시험하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계속 살 수 있는가- 혹은 타협해야 하는가.


 유부는 장난감을 뜯고 솜도 먹어치우는 녀석이다. 처음 유부가 흰 거품을 물고 쩝쩝거릴 땐 토한 건 아닌가 바닥을 살폈다. 이내 솜이라는 걸 알고 강제로 입을 벌려 솜을 빼냈지만 오늘 사온 장난감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지가 뜯어지거나 수선할 일이 있으면 손재주 없는 난 근처 수선집으로 달려가 옷을 맡기곤 했는데, 장난감 인형을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할 수밖에. 오랜만에 바늘귀에 실을... 실을... 아이코 눈이 어둡지만, 실을 꿴다.


 유부가 물어뜯은 뱃가죽, 옆구리, 귀와 입을 찬찬히 들여다본 뒤 바느질 각을 잰다. 상어 인형은 플라스틱으로 달려있던 눈까지 파내버렸다. 이건 내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이니 우선 등만 꿰매기로 하고, 최애 악어인형부터 손보자. 살펴보니 천까지 뜯어버려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다행히 실만 뜯어놓은 경우도 있어 각이 나오는 부위 위주로 우선 작업을 시작한다. 뱃가죽 같은 덴 천도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 뜯으래야 뜯을 수 없어 보이는데 그 사이를 파고들다니-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천까지 뜯은 부윈 결정을 해야 한다. 실로 이래저래 어떻게든 메꿔볼 것인가, 다른 천을 덧댈 것인가. 물론 집에 인형에 덧댈만한 천을 가지고 있진 않다.


 서툰 바느질을 하며 앉아있으려니 유부는 내 장난감을 왜 네가 가지고 있느냐며 자꾸 다가와 장난감을 집어가려고 기회를 노린다. 이거 노는 거 아니고 바느질-! 혹시라도 바늘로 아이를 다치게 할까 싶어 엄한 얼굴로 안돼- 하고 얘기해보지만 장난감을 뺏긴 유부는 뿌루퉁한 모양이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자꾸만 근처를 서성이는 유부. 바느질도 서툰데 유부까지 치워가며 손을 움직이려니 실 모양이 삐뚤빼뚤 난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한 땀 한 땀 바늘 길을 만든다. 내가 우리 동네 샤넬 코코다. (손바느질하셨을까요)


 그렇게 악어인형을 꿰매고 상어 인형을 꿰매고 뾱뾱이 슬리퍼를 꿰맨다. 공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저건 실이 똥으로 나온 걸 봐버렸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고무나 실리콘으로 만든 장난감만 주면 훼손될 걱정 없이 던져주기만 하면 될 텐데 여러 가지 장난감이 있어도 유부는 결국 천으로 만든 장난감을 들고 와 어깨를 툭툭 치며 놀자 한다. 빨아봤자 금세 더러워지고 열심히 꿰매 봤자 일주일이다. 두꺼운 실로 여러 번 칭칭 감아보지만 물어뜯는 건 한순간. 바느질은 한주를 건너 반복되고 난 반복되는 학습에 장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 악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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