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다래 Feb 03. 2022

박박 닦자

오늘의 청소 - 바닥 찌든 때

가족 중 상을 당해 새벽같이 일어나 지방에 있는 상갓집에 다녀와야 했다. 6시부터 일어나 간단히 유부 산책을 시키고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니, 유부녀석이 서럽고 외로웠나 보다. 우리를 보더니 오줌을 지리는 녀석. 유부 목에 줄을 두르고 호군은 후다닥 밖으로 나가고 난 유부가 흘린 오줌을 대충 닦으려 휴지와 냄새 제거제를 찾아들었다. 다행히 홍수가 나진 않아서 적당히 닦고 따라 나가려고 했건만... 이게 뭐지? 휴지가 까맣다. 분명 바닥엔 유부 오줌밖에 없었는데, 오줌을 닦고 냄새 제거제를 뿌리고 한번 더 닦아냈을 뿐인데 시커메진 휴지. 우리 집 바닥엔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닥청소를 언제 했더라...? 젖은 청소포로 닦았던 게 한 달 전인가 두 달 전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은 걸 보니 꽤 오래전이다. 전엔 베이킹소다 성분이 든 일회용 청소포로 바닥을 닦았었다. 예전엔 청소포를 죄책감 없이 사용했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제로 웨이스트까지는 힘들더라도 레스 웨이스트까진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청소포 사는 걸 그만두었다. 그 대신 극세사 걸레를 사용하는 편. 그러나 유부가 온 뒤론 극세사 걸레에 유부 털이 너무 많이 달라붙어 빨래하는 일이 쉽지 않아 실리콘 빗자루로 아침저녁 유부 털만 쓸어내는 청소만 해왔다. 그렇게 유부 털만 쓸어내도 먼지와 털 뭉치가 한가득이었기에 난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청소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지금까지 내가 한 청소는 뭐였단 말인가.


 다음날 아침, 극세사 걸레를 빨아 적신 뒤 밀대에 끼우고 낑낑거리며 바닥을 닦아냈다. 슬슬 밀어내는 청소가 아니라 밀대에 몸을 싣고 온 힘을 다해 박박 바닥을 밀었다. 내가 바닥을 밀자 유부는 뭐하냐는 듯 옆으로 다가와 털을 뿜어낸다. 이 녀석, 저리 가. 누나 청소하고 있는 거 안보이니? 거실과 방 하나를 겨우 밀었을 뿐인데 걸레 바닥이 까맣다. 망했다. 우리 집 바닥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난 뭘 하고 있었나. 빨랫비누로 걸레를 싹싹 비벼 빤 뒤 다시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바닥을 닦는다. 분명 털 청소를 하고 바닥을 밀고 있음에도 어디선가 털들이 뭉쳐 나온다. 다 밀고 난 뒤 걸레를 뒤집어보니 처음보단 확실히 덜 까맣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힘을 줘서 박박 닦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도구를 쓰는 동물이니 좀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싶어 베이킹소다를 물에 푼 다음 분무기에 넣었다. 원래 쓰던 청소포도 베이킹소다가 든 청소포였으니 비슷한 효과를 내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는? 폭망. 베이킹소다와 물의 비율을 몰라 적당히 섞었더니 너무 진해서 분사도 잘 되지 않을뿐더러 분사된 곳마다 흰색 얼룩이 생겼다. 뭐 저 흰색 얼룩이 있는 곳이 청소가 되는 곳이려니 생각하고 청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유부가 핥으면 큰일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이런저런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는데 바닥 닦는 전용 세제 광고들이 대부분이고, 알코올을 사용하라는 리뷰도 봤지만 그건 유부에게 왠지 해로울 것 같은 느낌. 가둬놓고 청소하지 않는 이상 세제나 알코올 사용은 쉽지 않겠다.


 결국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박박 닦아내는 것뿐인가. 유부에게도 해롭지 않고 집도 청결히 유지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은 예전보다 좀 더 자주,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박박 바닥을 닦는 것. 지금은 바닥 청소가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걸리지만 지금보다 더 자주 청소하면 이번처럼 두 번씩 닦지 않아도 괜찮겠지- 싶다. 


 온 힘을 다해, 박박.

 닦아보자.


작가의 이전글 가장 좋아하는 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