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다래 Feb 17. 2022

난 나의 불편을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가.

오늘의 청소 - 내 마음속 문장 하나

 요즘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시작은 동네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독서모임이었고, 지금은 그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좀 더 열심인 읽기 모임 중. 대부분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상호대차를 통해 받아 읽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엔 구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매한 책들은 대부분 되팔 것을 염두에 두고 소중하게 얌전히 읽는 편이다. 밑줄을 긋거나 종이를 접는 대신 마스킹 테이프로 태그를 붙이고 태그 한 문장은 블로그에 타이핑해 옮겨 적어둔다. 그런데 이번에 구매한 책들은 너덜너덜할 정도로 태그를 붙여버렸다. 내가 어떤 삶을 추구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꾸려가야 할지 알려주는 책을 만났다.


 그중 한 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 1998>을 읽다 보면 '초목 같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 시골에서 아쉬운 것이 어찌 하나 둘일까마는 오랜 세월을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오는 동안 웬만한 필요쯤이야 으레 참을 줄 아는 숙명 같은 미덕(?)을 키워온 것이다.'


 웬만한 필요쯤이야 으레 참을 줄 아는 미덕이라... 요즘엔 참지 말고 질러, 가 트렌드 아니었나. 그런데 정말 내 어렸을 적 생각을 하면 지금 나의 삶에 비해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난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아왔는데- 언제부터 난 이렇게 불편을 참지 못하는 인간 중 하나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난 나의 불편을 나의 필요를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을까? 그럼 그 이상은? 계속해서 불편을 더하는 질문이 어색하다. 오히려 내가 어떤 불편을 참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더 빠르겠다.


 내가 참지 못하는 불편은... 세탁기와 냉장고가 없는 것. tv는 이미 없고 오븐과 전자레인지는 없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냉장고도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해서 비워내기만 한다면 참을 수 있을지도. 세탁기는 견디기 힘들겠다. 이미 생리할 때마다 사용하는 면생리대를 손으로 비벼 빠는 것도 충분히 버겁다. 소파와 침대, 책장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바닥에 앉아도 되고 이불 깔고 바닥에 누워 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책을 다 비운다면 책장이 없어도 괜찮겠지. 그래도 옷장은 있었으면 좋겠다. 옷 위에 먼지가 앉는 것도 싫고, 옷방에 모여있을지언정 옷들이 눈에 보이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앉아서 컴퓨터를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책상과 좋은 의자는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내가 남기고 싶은 것,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 둘 생각하다 보니 포기가 안 되는 부류가 생긴다. 나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우리 집 막내 멍멍이 유부에게 꼭 필요한 것들, 푹신한 쿠션, 바스락거리는 장난감과 공, 하네스와 리드 줄 같은 강아지용품들. 나의 불편은 기꺼이 참을 수 있지만 유부의 행복은 참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이길 바라니까. 같은 이유로 호군이 좋다고 하는 것들은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에게 원하는 걸 모두 다 갖게 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나.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나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뿐이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주방용품, 욕실용품의 숫자를 줄이고, 냉장고 속 음식의 숫자를 조금씩 줄여나간다. 쌓아놓고 사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구매하도록 습관을 바꾼다.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서랍을 열어 1-2년간 한 번도 쓰지 않은 냄비를 비우고 베이킹 용품들을 정리한다. 다 사용한 수첩은 미련 없이 버리고,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은 차곡차곡 박스에 담아 중고서점에 보낸다. 그렇게 조금씩 빈틈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채워 넣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역시 나의 몫. 그렇게 비워낸 것들이 가끔 정말 가끔 아쉬울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내가 읽었던 문장을 꺼내 읽어야지.


 그렇게 나의 웬만한 불편이 익숙해지도록- 그 익숙함이 결국 나와 우리 가정에 선함이 될 수 있도록.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왜 저렇게 사느냐며 이상해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보이는 삶으로 보일 수 있도록. 웬만한 불편이 익숙해지는 연습을 오늘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버리는 두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