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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Dec 13. 2022

그리우면 그저 그리워할 수밖에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주 자주 생각하고 틈만 나면 시간과 시간의 사이 사이로 틈틈이 보고싶어하고 얼마나 문득문득 오래도록 그리워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자주 그립다. 보고싶다. 사실은 매일이 그렇다.



어쩔 땐 음악을 듣고 생각이 나버린다. 이건 네가 좋아했던 음악. 이건 네가 프로필로 해두었던 음악. 어떤 건 네가 불러주었던 음악. 또 어떤 건 우리가 함께 불렀었던 음악. 그리고 이건 너를 만날 때 내가 자주 들었던 음악. 또 어떤 음악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언젠가 내 글을 읽어주고선 생각난다 해주었던 음악. 글이 마치 어떤 음악 같다고 해줬던 건 너무도 최고 과찬이라 어찌 도통 잊을 수가 없다.



바뀌어진 공기감에도 네 생각이 난다. 현관문을 나설 때 코끝이 찡 해지는 계절이 오면 첫 만남에서 시집을 줬던 네 생각이 난다. 그 날 창 밖에는 눈이 나렸었지,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참 이상하게도 안도가 되는 사람이었어. 지금도 네가 단 하나도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건 내가 잘 알아.



해마다 오월에는 어쩔 수 없이 네 생각이 난다. 갖 피어난 연두잎에서 나는 초록초록한 내음과 물결들이 나기 시작하는 계절에는 늘 언제나처럼 네 생각과 함께 일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비까지 온다? 이미 끝났다. 으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에 이미 생각하고 말았는걸.



가을이면 지극히 당연하게도 너무도 오래도록 좋아했던 네가 생각난다. 네가 그리운 게 아니라 그 때의 내가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어느 작가님의 표현처럼 나의 부재를 알아준, 내 머리에 동그라미를 그려주었던 사람이니까.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왜 이리 늘 생각하면 눈물이 찔끔 날 것만 같고 감격스러운지 잘 모르겠다.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준 사람’을 어찌 꿈엔들 잊힐리야.



어떤 장면 장면들은 내가 죽는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스친다면, 무조건 나올게 분명할 정도로 자주 생각한다. 어쩔 땐 잠자기 전 그 장면 장면들을 생각하며 잊지 않으려고 마인드맵핑으로 훈련하듯 자주 떠올린다. 그 특별한 기억들은 아름다움이 각인된 총체적인 아우라라고 해야 하나, 잊지 못할 분위기랄 게 있어서 더 자주 잊지 않아주려 한다. 나는 이 영화의 연출감독이자 촬영감독이며 음악감독이고 주인공이자 유일한 관객이다. 장르는 상관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딱 10분 컷으로 영상을 만들라고 하면 당연히 얼른 만들 수 있다. 늘 생각하니까. 늘 그리워하니까. 늘 언제나 보고싶으니까.



그래서 나는야 늘 과거에 사는 사람. 과거에 살면 우울하고 미래에 살면 불안하고 현재에 살면 행복하다는데, 이미 너무 그립고 그리운데 뭘 어찌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어차피 현재가 그리 마냥 행복치도 않으니 과거에 살으리랏다. 그저 나중에 할무니가 되면 그런 기억들이 너무 많아져 포화상태가 되거나 아니면 아무리 생각하려해도 흐릿해져 가물가물 잊혀지면 어쩌나, 한다. 그건 그 어디에도 없고 내 안에만 있는데, 나만 알고있는데. 안돼, 그러니까 더욱 더 가열찬 훈련을 해야지.



나는 무언가를, 누군가를, 어떤 순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정말 정말 많이 좋아한다. 그럼 그리워하는 그 순간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이잖아. 그러니까 그게 꼭 과거만은 아니지않나. 과거와 현재가 이 순간에 같이 공존하는거니까. 그래서 그냥 다 됐고 이렇게 생긴대로 그리워하며 그리워하는걸 좋아하며 살아야겠다고도 싶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리워지는 것이 많아지는 것. 그리울 때는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보이는데, 그리움으로부터 홀연해지는 나이도 올까. 매일 철봉 끝에 간신히 데롱데롱 매달려있는 기분으로 사는 느낌일 때마다, 잎맥을 따라 보호색을 띄고 누워있는 애벌레처럼 가만히 웅크렸다 펼쳤다 기대어 쉬며, 그리운 것들을 그리운 대로 마음껏 오래도록 그리워하고싶다.



쌓여있는 눈을 보며 어찌 할 바 없이 고요한 무력감을 느끼듯이, 돌이켜보아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오듯이, 도저히 막을 도리없이 아름다운 꿈결에 나와버리듯이.



그러니까 그리우면 그저 그리워할 수밖에.


글 성지연  |  사진 영화 <인어공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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