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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Mar 01. 2023

살아있기에 당연한 것

불안

’평안하게 해주세요.’

늘 이런 기도를 했었다. 언젠가부터 내 오랜 간절한 소원은 늘 ‘몸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이었다. 나의 평안과 사랑하는 이들의 평안.


냉담자인지 오래이고 기복신앙처럼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는 기도를 잘 안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주 아주 가끔씩 화살기도를 한다. 생각해보니 보통 그럴 때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거나, 또는 불안해질 때이다.


불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1.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함 2.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3.몸이 편안하지 아니함이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읽다보니 어느샌가 내가 늘 평안을 바라고 바랐던 게 그건 즉, 항상 불안의 반대편에 가치를 두고 추구해왔던 걸 알았다.


평안. 늘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한 상태가 되기를 원했었는데, 단 한 번도 내 불안이 어디서 오는가는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는 언제 불안을 느끼는가,


첫번째로는 헤어질 것에 대해 미리 깊은 불안을 느낀다. 여기서 헤어지는 것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헤어짐을 말한다. 사고 또는 죽음같은 것. 예를 들어 나는 사랑하는 강아지 야호와 헤어질 것을 생각만 하면 바로 눈물부터 난다. 애정하는 존재들을 혹시 먼저 떠나보낼 생각을 하면 너무나 깊이 슬퍼서, 이기적이게도 내가 먼저 떠나고싶다.


두번째로는 생존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의식주같은 것들. 지금은 일을 하지만 혹시 늙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돈이 많이 드는 병에 걸린다면? 이렇게 집값이 비싼 세상에서 늙어죽을 때까지 내 한 몸 뉘일 내 집 한 채가 없다면? 가족 중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힘들게 노동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그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든다면? 그럼에도 결국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면? 생존은 결국 돈, 궁극적으로 자유와도 연결되는데. 죽을 때까지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세번째로는 나 자신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단 한 순간이라도 이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생명으로 태어나 다른 존재에게 의미있는 삶이 되고싶다. 머물러있다가 썩는 게 아니라 늘 흐르고싶다. 배우고 성장하고 깊어지고 넓어지는 삶을 살고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얼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고싶다. 모든 것들에게서 아무 의미없어지거나, 부질없거나, 재미없어지거나, 의욕이 없어지는 상태일 때 불안하다. 살아있어도 산 게 아니고,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지는 느낌이 불안하다. 단 한번뿐인 내 생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영위하고싶다.



이렇게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것들에 써보고나니ㅡ 알랭드 보통이 하고싶었던 말처럼 문득 어쩌면 불안은 ‘살아있기에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미리부터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그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일어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저 매일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을뿐이다.


내가 불안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자꾸 제대로 직면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룽뭉술하게 안개처럼 피어있던 불안에 대해 적다보니 오히려 명확해지며 똑바로 마주 설 수 있었다. 정말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 목소리로 인해서 헤매이거나 놓치더라도 그건 다른 사람의 길이 아니라 그것 또한 내 길이 될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불안을 가까이 하니 평안에도 가까워졌다. 늘 평안만을 바라고 바라왔던 기도문을 수정해본다.


‘저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불안은 살아있기에 당연함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함과, 늘 저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하는 지혜를 주세요.’ *



예전에 읽었던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다시 읽고 불안에 대해 썼습니다. * 마지막 문단은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구하는 기도문’을 바꾸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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