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시작해 빨리 망합시다
* 이 글의 내용은 김지운 산문집 <김지운의 숏컷> 중 '예민하지만 게으른 족속들에게'의 내용을 인용했고 거기서 영감을 얻은 글입니다.
"야 이런 아이디어 어떠냐"
"저거 나도 생각했는데"
"앞으로 이렇게 될 것 같지 않냐?"
나는 직업 특성상 예민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래서 언제나 내 주변에는 그렇게 놀라운 영감을 주는 예민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들의 안테나는 항상 빠르고,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들이 말하는 트렌드나 콘텐츠 관련한 예언은 거의 들어맞고 있고, 놀라운 감각과 섬세한 시각으로 조만간 일을 낼 것만 같은 위인들이 많다.
입으로는 모두가 전문가고, 눈으로는 모두가 이미 예술가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엇 하나 내 거라고 할 수 없이 빈손인 채라면,
문제는 일을 낼 '것만 같은' 에서 그치게 만드는 게으름에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약점이 하나 있는데, 한결같이 모두 게으르다는 것이다. 나 또한 게으름피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보다 더 심한 그들은 일종의 장애 수준이다. 한때 나도 그들과 어울리면서 10년 가까이 백수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우연한 사고로 백수생활을 청산하게 되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에겐 '고만한' 사건도 없어서인지 아직까지 그 모습 그대로 있다.
누군가 신박한 콘텐츠로 대박을 터트렸다는 기사에 '나도 저 생각 예전에 했는데'라는 말은, 나도 수없이 말해봤다. 저거 내가 먼저 생각했다며 내 맘속으론 뒷북이라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렇게 추한 자기 위안을 했다.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보는 것만 고수'라는 말이 있다. 예민한데 게으른 족속들한테 일어나는 현상이다.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체험으로 보는 감각만 일류라는 얘긴데, 보는 것만 일류가 되어서는 머리만 큰 아이로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매트릭스」의 로렌스 피시번의 명대사를 언급하자면 '케이크를 보는 것과 맛보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혹시 예민하고 게으른 족속들 중에 실재는 없고 보는 감각만 일류인 친구들이 있다면, 그래서 괴롭다면,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여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디어인 채로는 아무것도 평가받지 못하고, 아무 반응도 오지 않는다. 나의 신박한 어떤 아이디어는 끽해야 주변 열 몇 명의 지인들에게 말해주는 것으로 생명을 다한다. 그것도 며칠이면 까먹겠지. 그러다 누군가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개탄하며 술자리 안주 정도로 삼는 게 다겠지.
그러지 않으려면 생각에 머물지 않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일이 필요한데, 또 예민한 사람들은 완벽주의자가 많아서 완벽하게 시작하려고들 한다. (아이고 피곤타) 그것도 병이다. 허접하게 시작하는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많은데. 완벽함은 최종 아웃풋에 양보하고 시작은 허접하게, 빨리해보자. 일단은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으로. 그렇게 구체화 시키다 보면 만나는 단점들을 조금씩 보완하기도 하고, 같은 생각의 크루를 모으기도 하고, 그랬다 실패하면 또 다른 시작을 해보는 거고. 작게 시작해 빨리 망하자. 문은 두드려야 열린다는 오천만이 아는 명언도 있지 않나.
조금씩 자기를 실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기대 이상의 자기실현을 구현할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또다른 세상이 기다릴지도 모르니까.
상상하는 스티브잡스보다 실행하는 프로실패러가 되는 것이 더 멋질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보자 (내 자신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