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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May 22. 2023

처음으로 이웃을 경찰에 신고했다

주말의 기록

참고로 나는 며칠 전 다리를 다쳐 걸음걸이가 무척 느린 상태다. 어린이를 액티비티 센터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는데, 우리집이 있는 층 엘리베이터 내려서부터 아이 우는 소리가 복도에 가득했다. 그냥 떼쓰는 소리면 에구 아기가 뿔이 잔뜩 났네 하며 지나쳤을텐데 느린 내 발걸음을 멈춘 건 그 울음이 무언가 계속해서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들렸기 때문이었다. 한번 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때리는 소리가 긴 복도를 걸어 내 집 앞에 멈춰설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간간히 들리는 남자 어른의 목소리는 일어서! 똑바로 서! 이거 절대로 만지지 않는다고 말해, 당장! 이라고 아이를 윽박지르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무언가 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당연히 아이는 시키는 말을 하기는 커녕 정신없이 울부짖는 상태였고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 평소 그 집에 유치원 나이 쯤 되는 명랑한 어린 여자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와 911 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울고 맞는 소리가 들린다는 내 말에 911 담당자는 재빨리 나를 지역 경찰에게 연결해주었고 경찰 담당자는 왜 내가 ‘아이가 맞고 있다’ 생각했는지를 간단히 확인한 후 주소와 건물 출입 방법을 묻고 바로 가서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딱 이만큼 하는데도 왜 이렇게 손이 떨리고 심장이 떨리는지... 신고 다 하고 다시 복도 밖을 내다보니 다행히 잠잠해지긴 했는데 사실은 그것도 더 걱정이었다. 



신고 후 40분 정도 지나 경찰 한 분이 나에게 전화를 했고 좀 더 자세한 정황 확인을 하면서 건물에 들어왔다. 소리가 들렸던 집과 우리집은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끝과 끝 유닛이어서 방문한 경찰과 아이, 그리고 아이 아빠가 대화하는 소리와 모습이 모두 보였다. 경찰이 도착한 순간에는 집이 비어 있었는데 몇 분 안 되어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아빠가 복도에 나타났다. 아이를 후두려 패고 달래려고 밖에 나가 바람쐬고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은 집 안까지 들어가 여러 상황을 체크하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사를 마치고 복귀하는 길에 담당 경찰이 내게 전해준 이야기는, 아이 엄마가 응급 상황으로 병원에 있어 아이 아빠가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아이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에 아빠가 지나치게 흥분했던 것이라고 했다. 아이 아빠가 몹시 후회하며 아이 때린 사실도 모두 즉시 인정했고 감정적으로 좀 힘든 상태다 보니 본인이 선을 넘은 것도 반성했다고. 경찰 말로는 집 안의 상황이나 아이의 상태 등은 문제가 없어보였고 평소 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판단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일 때문에 이후에는 그 분도 더 주의하겠지, 와줘서 고맙다, 다음에도 또 그러는지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이 집이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이 있을 때 내가 911 에 전화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상황을 정확히 모를 땐 무조건 이머전시(911)로 전화해라, 긴급하지 않다고 섣불리 판단했다가 막을 수 있는 때를 놓치면 안된다, 라며 나의 신고를 독려하는 경찰. 사건은 일단락 된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현관문 너머로 들리던 소리에 마음이 너무 무겁다. 엄마는 어쩐 일로 없고 의존할 곳이 아빠 뿐인데 (무슨 실수인지 모르지만) 평소에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무섭게 자신을 때리고 윽박지르는 아빠가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주 작은 충격도 생각보다 얼마나 오래가는지 나는 우리집 어린이를 보면서도 생생하게 느낀다. 아이를 분명하게 훈육하며 키워야 하고 부모도 사람이라 순간 감정을 통제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내 아이가 자라서 되었으면 하는 모습’의 어른으로 행동해야 하는 게 부모의 어려운 책임인 것 같다. 모든 다른 습관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가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선을 넘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부디 아이 아빠가 다음 번에는 아무리 ‘이모셔널’한 상태여도 그 감정풀이를 절대로 절대로 아이에게 하지 않기를.


조금 고민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이에게 이 사건을 알려주며 두 가지를 당부했다. 조금이라도 쎄한 상황을 만나면 잘 관찰하면서 재빨리 신고할 것, 그리고 어린이 또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무조건 어른이나 주변에 도움을 청할 것. 생각보다 이 두 가지는 쉽지 않아서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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