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의 글
우리집 아기(=망아지, 당시 세 돌)는 정말 통제 불가능으로 활발하고 기절 초풍하게 하루종일 떠들어대고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고 호기심도 무지하게 많고 사람도 좋아해서, 저랑 기싸움 붙을 때만 아니면 때때로 참 편합니다. 아무하고나 잘 놀고 아무데서나 잘 놀고 아무거나 먹고 그런 편이라서요. 본인이 흥미있는 거만 있으면 그냥 내버려둬도 저 안 찾고 신나게 놉니다.
가끔씩 엄마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 같긴 하지만 대부분은 뒤에 제가 있기 때문에 별 불안함 없이 놀아요. 키즈카페 같은, 사방이 막혀있는 곳에 가면 어쩌다 다른 아이와 부딪히는 아주 가끔의 순간을 제외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래서일까요.
그간 망아지를 돌봐왔던 시터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빠도, 그리고 엄마인 저 마저도 망아지가 혼자 놀고 있으면 그냥 내버려둬요.
책 들여다보고 있으면, 들고와서 읽어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굳이 참견하지 않고 내버려둬요. 망아지는 혼자 부릉부릉 자동차 끌고 다니며 놀고 블럭으로 이것저것 만들고 바바바방~ 총놀이도 혼자 해요. 같이 놀아주면 당연히 더 좋아하지만, 한없이 해주지 못하니 조금씩 그냥 그런대로 놔두던 게 점점 더 빈도수가 늘어갔죠.
제가 집안일이든 뭐든 이것저것 하고 있으면 놀다말고 뛰어와서 하는 말이라고는
"비타민 주세요"
"젤리 주세요"
"길쭉한 과자(크리스피롤) 주세요"
등등의 단순한 요구.
최근 망아지가 세돌을 앞두고 자아가 강해지면서 아침 저녁으로 저와 기싸움 + 다툼 + 마찰이 생깁니다. 저는 저대로 예민해져서 애가 조금만 삐딱선 타면 애를 잡으려 하고, 그럴수록 애는 더 엇나가며 장난치거나 같이 반항하고 소리지르고 하죠.
오늘도 망아지는 혼자 다용도실에 가서 대추가 가득 들은 통을 가져와 바구니에 하나씩 옮겨담으며 신나게 놀았어요. 저는 설거지도 하고, 저녁 준비도 하고, 기타등등 일하면서 망아지 뭐해~ 간간히 질문이나 던지고 여느 때처럼 놔두었구요. 그렇게 실컷 놀다 남편이 귀가하고 망아지가 아빠를 졸졸 따라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사이 슬쩍 건너다 보니 대추와 바구니를 다 엎어 나동그라져 있는 거예요.
평소에는 그래도 다시 담아라, 하면 말을 잘 듣는 편이라 안방 티비 근처를 맴돌고 있는 망아지를 불러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무리 윽박지르고, 회유하고, 소리지르고, 부탁하고, 빌고, 말해도 망아지가 이리 뺀질, 저리 뺀질, 대추를 만지작 거리다 던지고 입에 넣었다 뱉고 (건대추라 차 끓이는 용도거든요) 이것 저것 다른 장난감 건드리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겁니다.
5분 지나고 10분 지나고 실랑이가 길어질수록 저는 부글부글 혈압 오르죠. 현관 밖 복도가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도 망아지는 배실배실 웃으며 뺀질거려요. "안할래요!" 같이 소리지르며 (휴) 스팀 팍팍 오르는데 기운은 빠지고 해서 내버려둔 채로 주섬 주섬 저녁 밥상을 치우다가 문득,
정말 갑자기 문득, 깨달았어요.
"망아지야,
이거 대추 엄마랑 같이 담을까?"
"응!!!!!!"
망아지는,
같이 하고 싶었던 거예요.
혼자 하기 싫고,
엄마랑 같이.
신나서 저랑 같이 대추를 담기 시작해서 2분도 안되어 그 많은 대추를 통에 다 넣고 엉덩이 흔들며 다용도실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오는 망아지를 보는데, 왜 이리 가슴이 짠하고 미안하던지요.
남의 손에 키워서 그렇든, 일찍 기관을 보냈기 때문에 그렇든, 무의식중에 저나 남편이 위험요소를 자꾸 제지해서 생긴 습관이든, 누나가 다 놀고서야 눈치보며 아빠 무릎으로 기어오던 제 동생을 닮았든, 엄마가 싫어할까봐 집에 친구 한번 데리고 가지 못하던 제 어린날을 닮았든... 망아지 가슴 속에는 벌써 그 망설임이, 단념하고 마는 것이 자리잡은 것 같아서 왜 이리 속상하고 미안하던지요.
엄마 이리 오라고, 같이 하자고, 나 혼자 안한다고, 그 말이 그 어린 것에게 무엇이 그리 어려워서 망아지는 그 말을 그냥 속으로 삼키고 다른 일 하는 엄마에게 괜히 와서 먹을 거나 한번 달라고 찔러보고 뱅뱅 맴돌며 혼자 책을 뒤적거리고 장난감을 쌓고 부수고 해온 걸까요.
생각해보면, 혼자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 책에 대해 참견하면 돌아앉지만, 옆에서 다른 책을 읽어주면 슬그머니 다가와 이것도 읽어달라고 하던 망아지였어요. 망아지가 미처 표현 못하고 그냥 바라보다 생각만 하고 넘어갔을 이런 저런 일들이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싶어서 가슴이 찌르르, 합니다.
육아 초창기에 망아지는 순한 편이라는 저의 말 끝에 누군가 해주신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순하고 떼 안 쓰고 예민하게 굴지 않는 아이일수록 더 방치되기 쉬워서 오히려 더 신경쓰고 들여다봐 줄 필요가 있다고. 그게 다름아닌 우리 망아지였어요. 그리고 다름아닌, 제가 그러고 있었더라구요.
혼자 심란해서 글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저는 어느새 방치가 습관이 된 엄마지만- 오늘부터라도, 내일부터라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망아지와 주거니 받거니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하루종일 내버려두다 잠들기전 삼십분 가량 살 부비며 장난치다 자는 것만으로 (그마저도 안 자려고 버티면 윽박지르는 것으로 마무리ㅠ) 나는 망아지에게 충분히 사랑을 다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이 어쩐지 무지무지 미안한 날입니다.
오래 전 비공개 커뮤니티에 작성했던 글을 다듬어 옮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