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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다.

#일기예요

by 마음씨

원래 잘 아프지 않는 편이다. 특별히 운동 같은 것도 챙기지 못하고 좋은 식단으로 규칙적이고 건강한 식탁을 챙기는 건 더 못한다. 그럼에도 뭔가 자잘한 감기나 알러지 같은 건 제법 나를 비껴가는 편이었다. 바이올린 할 때는 물론이고 아이 키우면서도 앓아 누운 기억이 잘 없다.


인생 가장 심한 아픔은 죄다 수술 때의 일이고 (그러니까, 겁이 많아 귀도 못 뚫은 내가 몸에 칼 댈 일은 몇 번 있었음) 그마저도 통증을 잘 참는 편이라 병원마다 나의 인내심에 감탄하는 칭찬을 듣곤 했다. (아플 때 무서워서 못 움직이고 소리를 못 내는 거 뿐인데...)


그래서 2년 전 쯤 정통으로 코로나에 걸렸을 때 정말 많은 생각을 했었다 - 아, 남들이 몸 아프다는 게 이런 거였어, 일어날 수도 없어서 기어다닌다는 게 이런 거였어. 목구멍이 타는 듯한 와중에 뜬금없는 자기 반성도 많이 했었다.


지난 주말, 캐나다는 공휴일을 붙여 월요일까지 쉬던 사흘간의 화창한 연휴 중반 무렵부터 왠지 목이 이상했다. 익숙한 인후통은 아닌데 쓰리고 칼칼한 감각이 스멀 스멀, 요즘 여기는 꽃가루가 한창이라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따뜻한 차를 몇 잔 더 마셨다.


그 다음날부터 온 몸에 미열(고열은 아닌데 너무 괴로움)이 감돌면서 폐에서부터 쓰린 통증이 사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목 아픈 건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딱히 기침이 늘지도 않고 콧물도 없고 그저 몸이 너무너무 아파지는 거였다. 이거 코로나 때랑 너무 비슷한데. 걱정에 마스크부터 썼다, 애 아프면 내가 고생이라.


열 오르는 걸 감지한 순간 두 가지를 했던 것 같다. 하나는 팀챗에 내 컨디션이 곤두박질 치고 있음을 알리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이번 주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확인하는 것. 언제나처럼 한밤중 서울과 싱크도 많았지만 더 걱정은 ‘변경하면 안되는’ 외부 세션이 몇 개나 포함되어 있다는 거였다.


하필이면, 아이 학교 점심도 늘상 유료 도시락을 잘 먹이는데 중간에 메뉴를 바꾸면서 이번 한 주 거르는 주간이었다. 지역 센터의 여름방학 프로그램 오픈도 껴 있어서 새벽같이 결제 대기하며 광클해야 되는 날도 딱 한복판에 있었다. 게다가 아이 방과후 행사 때문에 평소 라이드 해주시는 분이 아닌 내가 직접 픽업 가야하는 날까지. 하필이면!


코로나 겪으신 분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열과 함께 왔던 끔찍한 두통...! 그 두통까지 시작되자 진짜 고개를 들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운 거다. 그렇지만... 하루도 늦잠을 잘 수가 없었고 하루도 낮에 몸을 제대로 뉘이기 어려운, 하필이면 평소보다 더 바쁜 주간을 보내자니 정말이지............ 너무너무 힘든 거였다!!!!!!!!!!! �


휴.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가끔 평생 친구 편두통 때문에 한두시간 약 먹고 자는 건 보신 적은 있어도 병나서, 아파서, 회사 개인 일정 물리는 거 보신 기억이 거의 없을 거다... 누누히 얘기했듯이 뭔가 내가 견뎌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영양제 왕창 먹으며 좋아하는 일 즐겁게 열심히 해서 그런지 2013년 호된 기침병 이후 별로 그런 일이 없었지.


근데 이번엔 진짜 너무 아팠다. 너무 아픈데 해야만 하는 일들이 하필 아픈 때 치고 좀 많았다. 그리고 하필 애랑 딸랑 둘이 캐나다에 있어 뭔가를 팽개치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너무 아픈데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진짜 오래간만에 - 대체 옛날에 나랑 동생 둘 다 아픈데 엄마도 아플 땐 어떻게 했을까 - 생각을 다 했다. (엄마랑 비교 안한지 오래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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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어린이를 데리고 한국 식당에 가서 오뎅탕을 시켰다. 오뎅/어묵탕에 얽힌 추억이 너무 많아 먹으면서 갑자기 옛날 생각을 잔뜩 했고, 남은 건 가져와 오늘 낮에 떡 넣고 한 사발 더 먹었다. 다행히 열도 몸살도 가시고 ‘평범한 감기’처럼 약간의 두통이랑 코막힘만 남은 내 상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고민하다가, 맥주도 따서 딱 반 캔만 마셨다.


이 긴 글은 그냥 이번 주 큰 사고 안 치고 넘긴 내가 스스로 기특해서 쓰는 거다. 어린이가 어쨌든 전염되지 않아서 고맙기도 하고. 살다가 뭔일 한번씩 생기면 좌절이 되면서도 겁날 게 없어지기도 하는데, 이번엔 레벨업 대신 다소 극단적이지만 내가 사라졌을 때의 안전장치에 대한 고민을 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끝)



원문글: https://www.instagram.com/p/C7a6sKrum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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