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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41살의 마지막 달, 다시 글쓰기

건강하게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나에게

2023.10.20 퇴원하는 날 아침 @ 아산병원


만 41살이 약 한 달 남은 지금, 이렇게 쓰기 시작하는 글은 아주아주 나중에(어쩌면 생각보다 곧) 아주 고운 88살의 할머니가 된 나를 1인 독자로 생각하며 그때 나의 40대부터의 순간들을 돌이켜보며 재밌게 읽기 위해 지금부터 꾸준히 적어두기로 마음 먹은 결심의 시작이다. 

이제까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0여년을 일하는 중간중간 나름 여유와 즐거움도 열심히 누려가며 살아오고 있었지만, 올해 7월말 일상적으로 받은 유방외과 검진에서 무언가가 발견되고 지난 주 수술을 받기까지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정말 더 많은 생각을 한꺼번에 많이 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 생각의 중심을 관통하는 단어는 아무래도 '죽음'이었다. 내 병도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되었어도 이렇게 간단히 수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을 수 있고, 엄청난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예상치도 못한 병으로 본인의 인생에 갑자기 너무 짧은 시간이 남았음을 알게 되는 경우들도 본다. 하지만 감사하게 받은 삶이라는 것을, 악착같이 그 삶 자체를 연장시키기 위해 삶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거나, 아니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냥 되는 대로 자포자기하고 사는 것도 양쪽 다 엄청나게 무지한 일이다. 이번에 너무 마음에 드는 병원에서 좋은 교수님들과 의료진들을 만나게 되고,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게 수술을 진행하게 되면서 이번 경험을 계기로 인생의 남은 시간을 생명을 다하여 죽는 날까지 오늘부터 다시 새롭게,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기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병원에 있는 일주일 동안 시시각각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님들의 밀착 관리를 받다 보니, 나 혼자 있는 순간에도 '난 괜찮아야 한다' '난 태연해야 한다'는 의식이 나도 모르게 강하게 꽂혀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도움도 받기 싫어 혼자 입원하고, 혼자 퇴원하면서 내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던 입원 생활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예정보다 하루 일찍 금요일에 퇴원을 하고, 정말 너무나도 화창한 가을 날씨를 뚫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뭔가 단단하게 매여 있던 매듭이 탁! 하고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거실에 쏟아지는 햇살 속에, 어제 나온 나얼&성시경 가수님의 신곡 '잠시라도 우리'를 무한반복으로 커다랗게 틀었다. 짐을 풀고 따스한 빛 속에 앉아 빨랫거리를 정리하면서 음악을 듣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 터졌다. 나도 몰랐지만 가득 안고 입원했던 그 무서움이 풀렸을 수도 있고, 너무나도 초기에 발견해서 너무나도 쉽게 수술하고 돌아온 나와 달리 15년 전에 너무 늦게 발견되었던 엄마의 암이 떠올라서 슬펐을 수도 있고, 수술이 잘 되고 너무나도 건강하게 돌아온 내 모습이 기뻐서일 수도 있지만 그 중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한참을 울고 나서 또 씩씩하게 짐을 정리하고, 열몇번째 반복되는 노래를 이젠 익숙하게 따라 부르며 커피를 내렸다. 집에 가득한 늦은 오후의 햇살과 음악, 커피 향기가 너무나도 새삼스럽게 너무 행복했다. 그래, 이제부터 그렇게 생각만 해 오던 '내 삶의 행복하고 좋은 순간들'을 쓰자. 할머니가 되어서 읽으면 어이없을, 그런 화나고 억울하고 슬픈 얘기들은 빨리 잊어버리고, 할머니가 되어서 다시 읽으며 '참으로 내가 40대에 이렇게 귀엽게 행복하게 살았네'하고 웃음지을 수 있는 순간들을 틈나는 대로 기록하려고 한다. 남기면서도 행복하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도 행복하게, 하루하루 최대한 소중하게 살 작정이다. 또 소수의 지인들도 간간이 같이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공감되는 행복을 같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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