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래 Dec 02. 2021

뜨거운 북엇국

지랄엔 지랄로,

기분 나쁘다. 무척, 아주, 나빴다.


11월 마지막 날, 추워졌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적추적 비도 내렸다. 하루 종일 그런 날씨 일 거라는 예보를 보고서 뜨거운 국이나 스튜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7세 어린이는 아직 그런 걸 모른다.


“엄마가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근데, 나는 까르보나라를 해 먹고 싶은데,”


엄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마음, 그리고 까르보나라 정도는 본인이 만들 수 있다는 생각.(베이컨을 볶고, 면을 삶고, 마지막에 계란이 엉기지 않을 온도는 엄마가 맞추지만 치즈를 갈고 계란과 섞는 것은 본인이 하기 때문에 자기가 다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고기와 채소를 크게 썰어 푹 끓여 만든 스튜는 내일로 미루고 까르보나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남편의 주문 메뉴인 북엇국을 끓였다. 오늘도 술 약속이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고 매주 두 번 정도 저녁 약속이 있다. 첫 주엔 그러려니, 둘째 주에는 화가 났다. 이번 주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본인도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장의 무게가 참 무겁네.


그래, 오늘은 춥고, 지난주에 잔소리가 좀 미안하니 국을 좀 끓여두자.


북엇국을 끓였다. 나박하게 썬 무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손질해 물을 한 번 적셔 꽉 짜둔 북어를 넣고 또 볶는다. 타지 않을 온도에서 달달달달 소리가 나도록, 온 집에 생선 냄새가 가득해지면 물을 붓는다. 한 번 부르르 끓으면 작게 썰어둔 두부를 넣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끓인다. 처음부터 물을 많이 넣지 않고 물을 조금씩 더해 끓이는 게 포인트다. 이렇게 하면 손은 많이 가지만 크게 다른 간을 하지 않아도 국물은 뽀얗게 되고 충분히 진하다. 먹기 전 어슷 썬 파를 넣고, 가끔 계란 줄알을 치기도 한다. 보통은 깨끗한 국물을 좋아하지만 술을 마신 다음 날은 계란을 넣어 먹으면 속도 풀리고 종일 든든한 기분이 든다.


들어오면 국을 뜨겁게 데워 주려고 했다. 뭔가를 마시고 먹고 왔으니 밥은 없어도 되겠지. 열 두시가 다 되어 온 사람은 뭔가 요즘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다. 늘 그렇다. 연말이 되면 일이 많아진다. 싫은 소리를 하기도 듣기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하기도 듣기도 해야 하는 11월, 12월이 되면 늘 불편하다. 그래서 이번엔 좀 조심하려고 했다. 서로 나쁜 말하지 않게, 나와 관계없는 것들로 내 마음이 상하지 않게 내가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왕이면 좋은 얼굴로, 따뜻하게, 나쁘지 않은 마음으로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기분 좋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온 그는 그렇지 못했다. 잔뜩 찌푸려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을 마구 쏟아냈다.


괴로운 만큼 나를 괴롭히려는 거였을까? 그런 생각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진 못하겠다. 지랄에 지랄하는 가장 좋지 않은 방법으로 던지는 말을 쳐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심했던 나는 아직 견고하지 못하다.


싸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지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담은 마음을 너도 알아주길 바랬다. 차를 내리고 한숨도 내린다.

화를 담아 마구 내뱉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뜨거운 차에 불같은 마음을 녹여 흘려버린다.


너의 지랄에 나도 지랄해서 미안해.

부디 지금 나의 멈춤이 너에게 잠깐의 평화를 주길. 샨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