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카는 아니지만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쏘카는 정말 편리했다. 가까운 쏘카존에 주차된 차를 빌려 타고, 다시 그 자리에 주차해두기만 하면 됐다. 엔진오일을 갈거나 워셔액을 채울 필요도, 굳이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차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면 어플에 메모를 남기거나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할 수 있었다.
이동은 편리했지만, 아주 자유롭지는 않았다. 어쨌든 움직일 시간을 정해 미리 예약을 해야 했는데, 집 근처에 대여할 차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어딜 가든 차의 반납시간을 생각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다른 사람을 태우기로 했는데 실내가 지저분하거나 냄새가 배어서 난감한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빌려 타던 차가, 핀수영을 하러 다니느라 주말마다 필요하게 되면서 대여와 반납이 더 번거롭게 느껴졌고, 매번 요금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래, 이제는 차를 살 때가 됐다. 그동안의 경험 덕분에 나름대로 취향과 기준도 생겼다. 더 이상 <이걸 사느니 조금 더 보태서>의 마법에 혹하지 않으리라. 예산과 차종을 정해두고, 중고차 고르는 법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맘때쯤 친구가 해외로 이사를 하게 되어 살림살이를 처분한다고 했다. 목록에는 친구의 첫 차도 있었다. 나도 여러 번 얻어 탔던, 빨간색 소형차였다.
친구는 모임의 첫 오너드라이버였고, 우리는 그 작은 차를 함께 타고 많은 곳을 다녔다. 모두들 맥주를 좋아했는데, 그 친구만 빼고 실컷 마셔댔던 강릉 당일치기 여행은 지금도 종종 이야깃거리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카시트를 달고 딸을 태우던 친구의 그 차를, 나의 추억도 조금 깃들어 있는 그 차를, 내가 인수하기로 했다. 친구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 밤, 우리의 대화는 온통 그 빨간색 작은 차에 대한 것이었다.
운전을 하는 것과 차를 갖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친구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차를 넘겨주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쏘카나 회사 차를 7년이 넘도록 몰았는데 보험사는 그동안의 무사고 기록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아서 꽤 높은 보험료가 책정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구축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지 않는데, 그게 얼마나 불편한지도 깨닫게 됐다(어쩌다 운 좋게 지상 현관 근처에 주차를 하고 나면 웬만해서는 차를 빼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도 이제 차를 탈 때마다 시트와 사이드미러를 조정하지 않아도 되고, 차를 빌릴 때의 비용을 계산하거나 반납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도 된다. 주말마다 수영장에 가는 길이 더 즐거워졌고, 마트나 아웃렛에도 가뿐하게 다녀올 수 있다. 덕분에 운전을 더 자주 하고 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많다. 빠르게,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이 기계를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이 가장 좋지만, 도로 위에서 내가 나름 괜찮은 사회의 일원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도 운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깜빡이를 켠 차가 양보받는 걸 볼 때, 공유된 규칙을 지키는 한 배려받을 수 있다는 어떤 안도감을 느끼면서 나도 친절해질 준비가 된다. 꽉 막힌 내부순환로에서 사이렌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차들이 일제히 갈라지면서 구급차가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 줄 때면, 거의 눈물이 터져 나올 만큼 감격한다. 물론 핸들을 잡으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한문철 TV를 보면서 경각심을 다지곤 하지만 보통은 시원한 도로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들을 믿으며 액셀을 밟는다.
운전을 하기 전부터 운전사가 되고 싶었고, 차가 없어도 운전하는 걸 좋아했다. 내 차가 생긴 지 이제 서너 달. 타이어 공기압까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새롭게 열린 '자동차'라는 세계가 흥미롭다.
(photo from Mercedes-Be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