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나 한 편 보려고 했다.
집안일을 끝마친 주말 오후, 반쯤 드러누워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메인 화면에는 마땅히 끌리는 게 없고, 보통은 픽션을 좋아하는데 그날은 왠지 다큐멘터리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무심히 목록을 넘겨보다가, 바다가 배경인 다큐멘터리를 발견했고, 재생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제목은 <씨스피라시>. 나중에 알고 보니 2021년 화제였다는 그 작품을, 2023년에서야 그렇게 보게 됐다.
시작은 조금 어설프다고 생각했다. 그래, 플라스틱 사용 줄여야지. 고래잡이는 야만적이지. 하지만 일본의 고래잡이를 경찰 몰래 취재하며 눈물을 닦는 서양 청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이 위화감은 뭘까. 그렇게 팔짱을 낀 채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점점 더 빠르게 핵심으로 파고들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이 젊은 감독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미세 플라스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90분 만에 전 세계의 수산업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와 인권 문제, 이 거대한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다룬 다음, 간신히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끝이 났다.
바다를 참 좋아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바다에서 헤엄치거나 파도를 타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 스쿠버다이빙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로, 다이빙은 나에게 진짜 바다를 소개해줬다. 첫 다이빙 자격증을 땄을 때, 이제 지구의 80%를 탐험할 수 있다는 강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바다를 '탐험'하고 다니면서, 무한한 영역 같았던 해양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됐다. 해변 인근의 고작 30미터 깊이에서도 지겨울 정도로 그 흔적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 먼바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바다를 병들게 하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대부분이 어업에 쓰이는 도구들이라는 사실은 통계자료를 찾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왜 모르겠는가, 매번 눈에 보이는데.
바다에서 다이빙을 한다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상어를 만날까 봐 우려한다. 사실 상어는 굳이 찾아가서 만나고 싶은 생명체일 뿐이다. 바닷속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그물이다. 다이빙 장비 중에는 나이프도 있는데, 칼을 들고 바다에 들어가는 건 상어와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 또는 함께 들어간 다이버가 그물에 걸렸을 때 줄을 끊고 탈출하기 위한 도구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게 위협이 되는 그물과 어구는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발견되거나, 죽은 거북이의 사지를 조른 채로 떠오른다. 그리고 더 많은 그물들이 바닷속에 버려져 산호에 엉겨 붙어있거나 물고기를 가둬 죽이고 있다.
<씨스피라시>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결국 '해양 동물(marine animals)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감독은 "지속 가능한 어업"이나 양식업까지 고려한 뒤에 그렇게 결론을 냈다(물론 정부에는 더 큰 역할을 요구한다). 텀블러와 대나무 칫솔을 쓰고, 식당에 그릇을 가져가서 음식을 포장해 오는 것으로는 역시 모자란 거였군요. 계속 미루고 싶었던 숙제를 받은 기분이지만 차라리 다행이다. 이런 숙제라도 주어지지 않았다면, 거대한 구조 앞에서 무력감밖에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연어덮밥과 고등어구이와 참치김밥을 포기할 수 있을까? 회와 초밥을 거부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조금씩 노력해야겠다. 결국 지구라는 비행선을 타고 우주를 떠돌고 있는 나를 위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