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금귤나무
사람들은 어릴 땐 동적인 것을 좋아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정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강아지를 좋아하고, 중년이 되면 꽃과 식물을 키우는 거라고. 그러다 더 나이가 들면 수석을 모으게 된다는 거다.
어쩐지... 갑자기 식물을 키우고 싶더라니. 삼십 대 ‘후반’으로 분류되는 게 억울하지 않게 된 작년 봄, 화분을 집에 들이게 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우주의 섭리에 따른 것이었군요.
원래 식물을 키우는 일에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형편없는 실력을 자랑한다. 몇 번인가 선물 받았던 아이들은 몇 달 견디지 못하고 매번 죽어나갔다. “키우기 쉬운 거래.” 모두가 매번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집이 아무리 삭막하고 플랜테리어가 유행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식물은 들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나무를 키우고 싶어졌다. 그게 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그랬던 거구나.
벚꽃이 만개했던 지난해 4월 초, 여러 식물을 키우고 있는 친구를 섭외해 함께 양재동 화훼 단지에 갔다. 내 의지로, 내가 키울 식물을 고르러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올리브와 유칼립투스 나무가 예뻐 보였는데, 친구는 초심자에게 감히 걸맞지 않은 분들이라며 금귤나무를 추천했다. 나무는 몰라도 동행은 제대로 골랐군. 금귤나무라면 나만큼이나 식물을 사망시켰다는 J도 잘 키우고 있지.
화원 몇 곳에 금귤나무가 있었고, 그중 한 곳의 한 나무가 시선을 끌었다. 가지가 둘로 나뉘어 멋지게 위로 뻗어나가는, 이미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예쁜 나무. 가격은 싸지 않았지만 반해버렸다. 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자랐다는 점과 한동안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큰 화분에 담겨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화원 주인은 열흘에 한 번 물을 주라고 했고, 벌레가 생기지 않게 흙에 어떤 처리를 해서 집으로 배송해 준다고 했다.
이틀 뒤,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 나의 첫 나무가 와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좋았다. 화분을 베란다에 내어놓고 햇빛을 맘껏 쬐게 했고, 잊지 않고 물을 줬다. 과습이 오히려 식물을 죽게 한다기에 물의 양도 신경 썼다. 작은 손걸레를 만들어 잎에 쌓이는 먼지를 닦아주었다. 녀석은 무성하게 자랐고 부지런히 열매를 맺었다. 잘 익은 열매는 예쁘고 달콤했다. 초록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력해서, 작은 나무 하나로 집안 풍경에 생기가 더해졌다.
결국 나는 이 나무를 사랑하게 됐다. 그동안 죽어나간 식물들에게도 진작 관심과 애정을 주었더라면. 초록 엄지까지는 아니어도 초록 새끼손가락쯤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착각을 하면서, 겨울을 맞았다. 유난히 추운 날들이 이어졌고, 사랑하는 나무를 거실로 들여놓았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놓고 청소를 하는데, 이 아이... 너무 덥수룩한걸.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질렀다.
가지를 쳐낸 것이다. 시원하게.
나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헉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조금 더 충격적일 것이다. '잘라낸 가지와 나무에 남은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세기 전엔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때는 몰랐다. 그저 남은 나무의 모양이 꽤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다. 가지와 잎을 덜어냈으니 겨울도 더 수월하게 나겠지, 내 맘대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사랑하는 나무는 그때부터 조금씩 죽어갔다.
잎이 조금씩 노랗게 변하더니 우수수 떨어지고, 열매는 가지에 달린 채로 쭈글쭈글 말라갔다. 증상을 아무리 검색해도 속 시원한 해결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나무는 점점 더 빠르게 생기를 잃어갔다. 혹시 가지를 잘라낸 것 때문이었을까? 뒤늦게 가지치기에 대해 찾아봤고, 결국 내가 엉터리였기 때문에 나무가 죽어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금귤나무의 가지는 겨울이 아니라 봄을 앞두고 잘랐어야 했다. 둘째, 전체 나무의 20% 이내로만 잘랐어야 했다. 셋째, 잘린 단면을 보호해주어야 했다.
왜 진작 몰랐을까, 왜 진작 공부하지 않았을까. 아껴주고 싶었던 나무는 나의 무지 때문에 죽게 됐다. 아주 조금의 생명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뒤늦게나마 자른 단면에 약품을 발라주고 화분에 영양제를 꽂았다. 앙상하게 마른 몸통만 남은 화분을 베란다에 내어두고, 봄볕이 기운을 불어넣어 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바라고 있다.
이제 다시 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의 첫 금귤나무는 떠나보내게 되겠지만, 올해도 새로운 나무를 들일 예정이다. 그리고 공부해야지. 돌을 모으는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초록색 친구들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