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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eun Mar 19. 2019

08 롱샹 성당, 위대한 건축을 위한 브랜드 디자인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바젤 여행기

여행을 준비하며 구글 지도를 살펴보다가, 바젤 근처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롱샹 Ronchamp".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가 설계한 '롱샹 성당'의 그 롱샹이다. 바젤 중심에서의 거리는 90킬로미터 남짓.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바젤에서 롱샹 성당이 가깝던데, 하루 다녀오지 않을래요?" 묻기 전부터 K의 대답은 예상할 수 있었다. 건축가라면 롱샹 성당에 가자는 제안을 절대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롱샹 성당의 정식 명칭은 '노트르담 뒤 오 Notre-Dame du Haut'.(영어로는 'Our lady of the Height'로 번역된다.) 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되었던 성당의 재건 프로젝트를 1950년 당시 잘 나가던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에게 맡겨 1955년 준공한 가톨릭 예배당이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르 코르뷔지에를 설득한 것은 루시앙 르뒈 Lucien Ledeur 신부라고 하는데, 창작의 자유를 백 퍼센트 보장해주기로 했단다. 아찔한 결단력이 아닐 수 없다. 상대적으로 '갑'의 예산이나 파워에서 비롯되는 설득력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을'의 자유도가 올라가는 법이다. 자유를 얻은 르 코르뷔지에는 여태 몸담았던 모더니즘을 떠나, 시대와 양식을 초월하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날씨 요정의 가호가 함께했다.


직접 본 성당의 외관은 커다란 조각 작품 같았다. 서있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입면을 보여주는데, 어느 방향에서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비례감이 좋다. 사진으로는 눈에 띄지 않던 색깔과 그림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건물 북쪽에 위치한 문을 열어보니 캄캄하다. 안쪽 문을 여는 순간, 정면으로 색색의 빛이 쏟아지듯 들어오는 장면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세 곳의 작은 코너에서는 아주 높은 곳에서 들어온 햇빛이 좁고 둥근 벽에 부딪히며 아래로 흘러내려,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글이나 사진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경험이었다.


노트르담 뒤 오의 실내


모든 분야의 예술에는 역사적 가치, 이론적 배경, 새로운 공법이나 기법 등에 바탕을 둔 이성적인 의미를 차치하고, 경험하는 것만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다. 건축을 예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건 그런 특별한 행복감을 주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롱샹의 이 성당처럼.



한편,


이 훌륭한 건축의 주변부에서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건축만으로도 이야기가 넘쳐나기 때문에 아무도 시간을 할애해가며 언급하지 않는 일반적인 것들. 르 코르뷔지에와 렌조 피아노 Renzo Piano 같은 거장의 탁월한 건축적 성취에 비하면 평범한 결과물들. 하지만 노트르담 뒤 오라는 건축 자체가 브랜드가 되도록 뒷받침해주는 시각적 디테일들. 아, 이 위대한 유산 앞에서조차 직업병이 발현되고 말았다.



1. WEBSITE

www.collinenotredameduhaut.com 화면 캡처 (사진 ©ADAGP, 2013 Paris)


떠나기 전, 방문 시간 등 세부 정보를 찾으러 웹사이트를 방문했을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오늘날의 웹 환경에 맞게 풀 화면 이미지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큼직한 타이포를 썼다. 게다가 반응형이라 모바일이든 랩탑이든, 디바이스 해상도에 맞춰 적절한 레이아웃으로 보인다. 3개 국어로 동일하게 제공되는 풍부한 정보까지. 모든 게 친절하게 느껴졌다. 물론 기본적인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만, 프랑스 시골마을의 수도원이라는 공간의 성격이나 건축가와 건축물의 명성을 생각하면 고루하거나 폐쇄적이어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 사례를 이미 너무나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하지만 노트르담 뒤 오의 웹페이지는 변화하는 세상을 신경 써가며 발을 맞추고 있었고, 그 모습에서 생생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오래전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과거에 기대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원로배우 같았달까.


메인으로 쓰인 서체는 스텐실 폰트의 한 종류인 '앤드류 앤디 스텐실 볼드 Andrew Andy Stencil Bold'체다. '스텐실 stencil'은 그림이나 문자의 모양이 뚫려있는 얇은 판을 대고 그 위에 잉크나 안료를 찍어 모양을 새기는 방식을 일컫는다. 문자의 경우, 공법적 특성 때문에 'O'나 'A'처럼 폐쇄적인 속공간이 있는 알파벳의 경우에도 판과 연결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두고, 'M'이나 'E'처럼 자칫 너덜거릴 수 있는 알파벳도 획을 분할해 판에 잘 고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글자의 여러 디테일뿐만 아니라 획을 분할하는 방식을 통해 폰트의 성격을 더 드러낼 수 있다.


개성 강한 폰트를 선택해 타이틀마다 일관성 있게 적용한 점은 인상적이지만, 왜 굳이 이 폰트였을까? 롱샹 성당의 외관과 딱히 닮은 점도 없고, 웹에서 굳이 스텐실 타입을 쓸 필요도 없는데. 이 의문은 롱샹 성당에 직접 가서야 풀렸다.



2. SIGNAGE

성 클라라 수녀회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 


노트르담 뒤 오에 가려면 산길을 한참 올라야 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성당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중턱을 넘었을 때쯤 특유의 지붕만 언뜻언뜻 보이다가 앙상한 나무에 가려지곤 했다. 곧 도착한다고, 몇 미터쯤 남았으니 계속 올라가라는 사인도 하나 없이 고요한 길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이 길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텐데, 뭐라도 팔았을 텐데, 이 곳에 번데기 포장마차가 있었을 거야, 이쯤에서 군밤을 팔고 뽕짝이 나왔을지도 몰라, 여름에 걸어두었던 빛바랜 현수막이 너풀거리겠지, 닭백숙집 배너가 세워져 있었을지도. K하고 농담처럼 얘기하다가 사찰 입구조차 치열한 생의 현장일 수밖에 없는, 눈도 귀도 시끄러운 풍경이 떠올라 조금 씁쓸했다.


마침내 입구에 다다라, 노란색 입간판을 만났다. Porterie / Entrance라는 글자와 방향표시가 뚫려있었다. 이거 웹사이트에 쓰였던 서체! 건축물의 사인에서 온 거였구나. 입구뿐만 아니라 새로 지어진 건물의 모든 사인이 같은 재료와 같은 공법과 같은 폰트를 쓰고 있었다.(사인이 설치된 진입로를 포함하여 성당 입구의 게이트하우스 La porterie와 성당 근처의 성 클라라 수녀회의 수도원 Monastère Sainte-Claire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하여 2011년에 준공된 공간이다. 그래픽과 사인은 M.Harlé 의 컨설팅을 받았다고 소개되어 있다.)


성 클라라 수녀회 수도원 건물의 사인들


얇은 금속판에 글자를 구멍으로 뚫어 사인으로 사용했다. 이런 방식을 쓰면 한두 개의 글자가 탈락되거나 빛바랠 위험이 없고, 뚫린 공간을 통해 배경이 되는 건물이나 풍경을 받아들여 시각적 연속성을 얻을 수 있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정보를 주면서도 렌조 피아노의 건축과 언덕의 풍경을 덜 해치기 위해 선택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인의 제작 방식 때문에 스텐실 폰트를 썼을 거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웹에도 같은 서체를 적용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LOGO & TYPEFACE

노트르담 뒤 오의 심볼과 로고타입

성당의 초입, 게이트하우스에 들어섰을 때,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잠에서 덜 깬 듯한, 세수도 안 한 것 같지만 미모는 눈부신 프랑스 청년이 어딘가에서 나타났다. 티켓과 잔돈을 건네주며 어디에서 왔는지 묻더니 한국어 리플릿을 주었다. 세상에, 한글이라니! 번역된 문장도 어색하지 않았다. 구글 번역기를 써서 대강 구색만 갖춘 가이드가 아니었다. 누가 이런 고마운 일을 했을까.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국문 본문 서체로 '나눔고딕'을 썼다는 거다.


노트르담 뒤 오의 영문 가이드 리플릿과 한글 가이드 리플릿


해외에서 한글 안내문을 만나는 것은 이제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어설픈 고딕체를 많이 쓴다. 유명한 폰트 판매 플랫폼에서 구할 수 있는 한글 서체가 대체로 그렇게 생겼다. 대만이나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 만든 것으로, 어쩔 수 없이 한글에 대한 이해와 미감이 떨어진다. 어차피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어떻게 생겼든 한국어인데. 하지만 평생 한글을 보고 자란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기가 어색하다. 평소에 나눔고딕을 선호하는지 묻는다면... 글쎄... 하지만 노트르담 뒤 오에 비치된 한국어 리플릿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서체를 썼다는 게 기뻤다. 네이버, 정말 큰 일을 했구나.(만약 한국인 디자이너가 작업했다면 제목 정도는 분위기를 맞추어 스텐실 타입을 쓰고 본문 서체로는 더 심플한 것을 골랐겠지만, 여기에선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자.)


영문 리플릿을 포함해, 단지 안에서 만나는 정보의 제목에는 항상 예의 그 폰트가 쓰였다. Andrew Andy Stencil Bold. 순례자의 숙소에 놓여있던 안내문에도, 기념품 샵의 연필에도, 심지어 종이에 프린트한 간이 사인에도. 이쯤 되면 폰트 자체가 궁금해진다. 검색해보니 미국의 프리랜서 디자이너 Robert Schenk가 1994년 디자인한 서체다. 디자이너의 홈페이지를 조금 들여다보다가, 마음이 어지러워져 창을 닫았다.


노트르담 뒤 오에서 쓰인 Andrew Andy Stencil Bold 서체


서체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은 브랜드의 동일한 시각 언어를 구축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브랜드에서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개인적인 의도나 취향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에서 고유의 서체를 만든다. 사실 작년에 만든 안내문에는 궁서체를 쓰고, 올해는 굴림체를 쓰고, 내년에는 돋움체를 쓴다 해도 노트르담 뒤 오의 명성에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메시지의 내용 자체는 변함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모든 메시지가 동일한 신뢰감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좀처럼 화려할 일도 없고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서울에서 온 까탈스러운 방문객이 어느 것 하나 거슬려하지 않고 건축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스케치, 가구, 순례자의 숙소에서 발견한 프레임 등 못다 한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서 줄여야겠다. 바젤에 가게 된다면, 롱샹 성당에 꼭 찾아가 직접 느껴 보시길. 빛이 풍부한 맑은 날을 골라가면 좋다. 이때 꼭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는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거다. 헐렁하게 구글 지도만 믿고 출발했다가,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작은 마을길을 지나, 산길을 한참 걸어 올라간 뒤에야 겨우 성당에 닿는 경험은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러다가는 우리처럼 호텔을 나선 지 거의 세 시간 만에 성당에 도착하게 될 테니까. 사실 가는 길은 그런대로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롱샹 역에서 바젤로 돌아가는 열차가 오후에 딱 두 번뿐인 데다 택시도 잡을 수 없고 근처에 마땅히 시간을 보낼 곳도 없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게이트하우스에는 에스프레소 자판기뿐이고, 롱샹 마을의 식당이나 상점들은 영업시간이 제멋대로이니 간식도 준비하는 게 좋다. 세수를 하지 않아도 눈부신 미모에 상냥하기까지 한 직원이 자기 캐비닛의 초코 크래커를 나누어주는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면, 허기를 달랠 방법이 없으니까.


롱샹 성당에는 고양이님도 계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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