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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Mar 17. 2019

07 건축가의 의자들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바젤 여행기


#비트라 샤우디포 Vitraschaudepot


비트라에서의 두 번째 날

오늘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Vitra Design Museum과  비트라 샤우디포 Vitra Schaudepot에서 열리는 전시와 내부 공간을 둘러볼 예정이다.


Vitra Schaudepot (Schau 전시+ Depot 창고)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20,000점이 넘는다는 비트라 컬렉션을 위한 수장고 격인 공간이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비트라의 컬렉션은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왔는데, 롤프 펠바움은 수장고의 개념을 재정의하여 이 컬렉션에 대중의 접근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당초 지하창고 일부를 증축하고 관람동선을 추가하는 수준의 계획은 구조보강에 따른 비용 문제로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설계한 Vitra Schaudepot. 'Seats of Power' 전이 열리고 있었다. ©hybridKIM


 

#비트라에서 만난 건축가의 의자들


비트라 샤우디포에는 18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디자인 체어 400여 점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오늘은 그중 약 20점을 발췌하여 'Seats of Power'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시의 주제와 상관없이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건축가의 의자들이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 알바 알토, 아르네 야콥센, 프랭크 게리, 알레산드로 멘디니...

책에서 봐왔던 건축가들의 수많은 의자들, 그 의자의 실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오늘날 의자는 산업디자인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더니즘이 촉발하던 20세기 초반 대다수의 의자는 건축가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오랜 기간 권력을 상징하는 오브제였던 의자는(권좌, Chairman라는 단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장식적이었다.


고릿적 의자들. 16세기 르네상스, 17세기 바로크 스타일 의자. 출처 https://collections.vam.ac.uk http://www.onlinegalleries.com
물론 현대사회에도 그런 의자는 존재한다. 의자의 높이와 꽃무늬 장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싶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 http://www.gobalnews.com

이는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합리성이나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었고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만들어낸 공간에 어울리지 않았다.


총제적 관점에서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만든 공간에 어울릴 만한 의자를 직접 디자인하기에 이르고, 의자는 곧 자신의 건축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건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건축학과의 설계 커리큘럼에 의자 디자인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공간을 완성하는 의자


게릿 리트벨트(Gerrit Rietveld, 1888~1964)와 적청 의자(Red and Blue Chair, 1917/1923)
적청 의자. 출처 https://www.rietveldschroderhuis.nl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게리트 리트벨트는 권위와 부를 과시하는 장식품이 아닌 새로운 조형을 실험하는 대상으로 적청 의자를 디자인했다.


단순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이 의자는 1917년에 대량생산을 고려해 최초로 디자인되었으며 게리트 리트벨트가 1919년 궁극적인 단순함과 추상성을 추구하는 신조형주의 De stijl 운동에 참여하면서 1923년 삼원색과 검은색을 적용한 디자인으로 변경된다.


몬드리안 회화의 3차원 실현처럼 보이는 슈뢰더 하우스(1924)는 적청 의자와 같이 신조형주의자들의 예술적 이상이 담겨있으며 모더니즘 운동의 아이콘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슈뢰더 하우스. 출처 https://www.rietveldschroderhuis.nl
적청 의자가 놓인 슈뢰더 하우스. 출처 https://www.rietveldschroderhuis.nl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와
바르셀로나 체어(Barcelona Chair, 1929)
바르셀로나 체어 Barcelona Chair(1929)

철골조와 유리 커튼월 건물의 로비에서 자주 접했을 법한 미스의 바르셀로나 체어는 1929년 열린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 독일관인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와 함께 근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스는 모더니즘의 산실인 바우하우스의 세 번째 교장을 역임했으며 'Less is more'라는 문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바르셀로나 체어의 디자인은 이러한 미스의 건축 철학을 잘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으로 바우하우스 시대의 건축가들이 대중을 위한 집과 가구를 디자인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바르셀로나 체어는 만국박람회에 참석하는 스페인 왕족을 위해 디자인되었다는 점이다.

1953년부터 이 의자를 제조한 Knoll에 따르면 공산품 같은 외양과는 달리 거의 수작업으로 생산이 된다고.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출처 https://miesbcn.com
007 카지노 로열 (2006)에 등장하는 바르셀로나 체어. 출처 https://www.moviestillsdb.com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1976)
암체어 41 “파이미오“(1932), 스툴 60(1933). 출처 https://www.artek.fi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라 불리는 알바 알토는 스스로를 예술가라 여기지는 않았지만

가구, 직물 및 유리 제품, 조각, 회화 등을 “건축이라는 나무줄기의 가지” branches of the tree whose trunk is architecture로 생각해 건축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파이미오 결핵 요양소(1932)는 조명을 포함해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로 채워진 대표작 중 하나.


1935년에는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 Aino Aalto(1894-1949)와 함께 가구회사인 아르텍 Artek을 설립하였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아르텍은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이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추구했으며

가구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전시와 교육을 통현대의 생활문화을 목표로 했다.

아르텍은 알토를 오래전부터 흠모해온 롤프 펠바움에 의해 2013년 비트라에 인수된다.


급진적 모더니스트들이 기하학적 추상을 통해 절제미를 극대화하려 한 반면

알바 알토는 절제된 형태를 수용하면서도 나무라는 자연소재를 활용하고 유기적인 선형을 가미했다.

합판에 열을 가해 구부리는 기술인 벤트 우드 Bentwood 기법을 통해 보다 편안한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 특징이다.


알바 알토 스튜디오에 놓인 암체어 400 "Tank" (1936)과 스툴 60(1933) ©hybridKIM
알바 알토 스튜디오에 놓인 스툴 60(1933) ©hybridKIM



찰스 & 레이 임스 (Charles Eames 1907-1978, Ray Eames 1912-1988)
DCW(Dining Chair Wood, 1946)와 DCM(Dining Chair Metal, 1946) 출처 http://www.eamesoffice.com


이름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찰스 & 레이 임스 부부는 1941년 결혼 이후 합리적인 가격의 의자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입체 성형기술 개발을 시작한다.


2차 대전 기간 부상병들을 나르는 부목, 들것 등을 생산하며 진행했던 재료와 형태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쟁 이후 고품질의 저렴한 의자를 선보인다.

 

각각 건축가와 화가로 훈련받은 이들은 '모든 것이 건축이다'라는 전제하에 건축은 물론 산업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회화, 영화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1949년 Arts & Architecture 잡지가 후원하는 사례 연구의 일환으로 임스 하우스 Eames House라 불리는 자신들의 집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Case Study House #8를 건축했으며

3차원 성형합판, 섬유 유리, 플라스틱, 와이어 매쉬 등의 다양한 소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가격(비교적)가볍고 내구성 있는 의자들을 디자인했다.


이들이 사용한 소재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신적이었는데 그를 반영하듯 임스의 가구 이름에는 소재의 이름이 반영되어있다.


비트라 1957년  허먼 밀러사로부터 이들의 유럽 및 중동 판권을 획득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피버 글라스 사이드 체어 FIBERGLASS SIDE CHAIRS(1951)와 와이어 체어WIRE CHAIR (1951). 출처 http://www.eamesoffice.com


Eames House라 불리는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Case Study House #8 (1949) 출처 https://www.architecturaldigest.com


임스 하우스 Eames House 내부. 출처 https://www.architecturaldigest.in



아르네 야콥센 (Arne Jacobsen,1902-1971)
에그 체어 Egg Chair(1958)와 스완 체어 Swan Chair(1958). 출처 https://fritzhansen.com


아르네 야콥센은 에그 체어 Egg Chair, 세븐 체어 Series 7 Chair 등의 의자들로 더욱 유명하지만, 그 역시 건축가였다.


에그 체어 Egg Chair(1958)와 스완 체어 Swan Chair(1958)는 196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문을 연 SAS 로열 호텔(현재 래디슨 컬렉션 호텔)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SAS 로열 호텔은 당시 북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호텔이었는데 아르네 야콥센은 이 호텔의 설계는 물론 가구, 식당의 커트러리,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재떨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오브제를 디자인하였다.


그의 의자들은 간결한 형태와 우아한 곡선, 균형 잡힌 비례감 등을 가지고 있는데 모더니즘이 현재에도 외면당하지 않고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이유는 아르네 야콥센과 같은 북유럽 디자이너들이 이런 인간적인 요소(humane element)를 추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르네 야콥센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디자인에서 보이는 균형 잡힌 비례감의 근원은 고대 이집트 사원이나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에서 받은 영 덕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과거의 역사주의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며 출발한 모더니즘이 5~60년대에 이르러 다시 고전의 아름다움을 차용해 옴으로써 더 긴 생명력을 가지게 되다니,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의 의자들에는 에그 체어와 스완 체어 외에도 앤트 체어와 세븐 체어가 있으며,

아름다운 형태는 물론 가볍고 안정적이며 쌓기 쉬운 형태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는데 그중 세븐 체어는 2017년도 기준 900만 개 이상 판매되었다고.

앤트 체어 Ant Chair(1952)와 세븐 체어 Series 7 Chair(1955). 출처 https://fritzhansen.com


SAS 로얄 호텔. 출처 http://wikimapia.org ,  https://fritzhansen.com


포스트 모던의 시기로 넘어오면서 의자는 본연의 기능보다 건축가의 개성을 표현하는 조형물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프랭크 게리의 위글 체어 (1972),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프루스트 체어 (1978),  자하 하디드의 Z-체어(2011)



#취향의 발견 


"이 중에 하나를 가져간다면 어떤 걸 가져가고 싶어요?"


멀찌감치 떨어져 의자를 감상하던 E가 다가와 물었다.

E는 아주 신속하고도 명확하게 에그 체어라고 답한 반면 나는 질문에 쉽게 답을 정할 수 없었는데,

어디에 두는 것을 가정하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체어라고 대강 얼버무리긴 했다.)

그것이 미래에 갖게 될 사무실의 회의실 일지, 이미 가구로 가득 찬 우리 집 거실 일지, 아니면 이사 가서 새로 꾸밀 다이닝 일지... 꼭 하나만 가져가야 되는 건가?


SNS에 넘쳐나는 '갬성 사진'들 속에서 여전히 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임스 체어, Y체어, 알토의 스툴들을 보고 있노라면 바우하우스(1919)가 벌써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라이프 스타일이 변화하고 자기만의 취향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디자인 체어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집안에 있는 물건 하나로 공간에 힘을 주고 싶다면 그것이 가진 기능과 스케일 등을 고려했을 때, 그 물건은 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의자 하나로 공간에 일관성을 부여하거나, 조금 특별한 디자인으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의자는 우리에게 이미 '사람이 걸터앉는데 쓰는 기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왔지만 정작 우리의 관심사 밖에 머물렀던 이 물건에 대해 김영민 교수님의 방식의 질문이 필요한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자란 무엇인가


돌아온 숙소의 다이닝 공간에는 아르네 야콥센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공간, 저기 저 의자와 너무 잘 어울리는 E와 매일 조식을 함께 했던 바젤 유스호스텔의 다이닝 Dining 공간 ©hybrid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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