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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cos Nov 06. 2015

저녁놀 보는 새벽녘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은 왠지 모를 슬픔이 차 있다. 그것은 지루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시작의 시간일 수도,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하루의 시작일 수도 있다. 어둠은 밝아졌지만, 불 꺼진 방안의 눈 뜬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어둠이 가득 차 있다. 출근길, 보이지 않는 새벽 공기는 새벽이슬로 만들어진 투명하고도, 두터운 층 때문인지 아침의 소리는 왜곡되어지고, 시야는 또렷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합은 차갑고, 어둡고, 생소하다.

 

건물 숲 사이로 보이는 산 너머로 아침해가 떠오른다. 지하철 한 구석에 몸을 구겨놓고, 지나가는 양화대교 위에서 머릿 너머 너머로 보이는 창 밖의 해는 마치 저녁 놀처럼 붉게 타올랐지만, 그 앞으로 보이는 깨끗하게 다린 셔츠와 정장, 그리고 하품소리인지 한숨소리인지 모를 숨소리는 나를 다시 2호선 통근열차로 몰아 넣는다. 어제의 풍경과 별반 차이 없는 오늘이라서  더욱더 슬퍼진다. 달라진 거라고는 핸드폰  날짜뿐이다. 정말 그것밖에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정말 그것뿐이라서 머리만 지끈 아파올 뿐이다. 우리는 그저 아주 조금 슬퍼질 뿐이다. 워낙 잠시 동안 느껴지는 감정이라서, 슬픔의 존재는 깨닫기도 전에 지구 밖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 후 뒤따르는 뭔지 모를 답답함이 몸 안 구석구석 기생하여 남아있는 기척 마저 빨아 버린다.



붉으스름한 저녁놀 같았던 아침의 해가 서서히 제 색을 찾아갈 때쯤, 피곤한 육체에 뒤떨어져 있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는다. 달라진 것 없는 하루가 달라질 것 없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시작된다. 발걸음에 맞추어 따라오는 풍경마저도 달라질 게 없다. 분주하게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카페, 깨져있는 보도 블록,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넥타이 부대의 뒷 모습.

 

이 모든 것은 어제의 풍경이었고, 내일의 풍경일 테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랗게 물든 파란 하늘은 땅바닥에 간신히 두발 걸친 나의 마음속을 휘젓고 다녀, 심장을 겉돌아 나가는 혈액마저 파랗게 물들이고, 그러면 지친 내 마음은 지면에서 조금 떨어져 두둥실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꼬랑내 나는 구두 속 두 발은 언제나 땅바닥의 족쇄에 묶여, 마음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갈 곳 없는 몸뚱이만이 익숙해진 풍경을 따라서 그나마 어제도 밟았고 그제도 밟았던 발자국에 오늘 발자국을 겹친다. 외롭고도 씁쓸한 그 길을 나서는 발걸음은 처량하다.


 

물 한잔 떠다 놓고,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책상 위를 바라본다. 내가 일상으로 들어가는 준비과정은 항상 그랬다. 멍하니 앉아서 생각이란 것을 지우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했다. 어딘가 날아가 있던 내 마음이 제 몸뚱이를 찾게 시간을 주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잘 찾아올런지, 아니면 이 몸 저 몸 떠돌다 점심시간이 지날 즈음에 나 내 몸에 들어올런지. 


해가 지고 퇴근 열차에는 저녁놀이 아닌 깜깜한 밤하늘이 나를 반겨준다. 아마도 저녁놀은 출근길 봤던 붉그스런 아침해로 퉁쳐야겠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만, 저녁놀 보는 시간이 언제였었나 생각해보니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새벽 공기보다는 가볍고 조금 들떠있는 듯한 밤하늘의 공기는 그나마 날 생기 있게 만들지만, 이내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사실에 또 담담해진다.

 

저녁놀을 보는 새벽녘, 새벽 공기와 같은 퇴근길의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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