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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Apr 11. 2022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게 되면

어릴 때 나의 최대 고민은 내가 무슨 일을 결심하든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럼 결심을 삼일마다 다시 하면 되지!'라는 묘수를 떠올렸고, 그건 제법 잘 통했다.


간혹 '결심'하는 일 자체를 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거의 대부분의 날들을 매일 아침마다 그날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 적어두고 그 일을 해치울 때마다 목록을 하나씩 지우는 재미로 살았다.


내가 적는 목록은 대부분 무척 사소한 것들이었다. 비타민 챙겨 먹기, 빨래 개기, 일기 쓰기, 환기시키기 뭐 그런...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적었다. 그리고 실행하면 지웠다. 그게 내 하루를 산뜻하게 만들고, 내 자존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허투루 살지 않았구나, 오늘도 무언가를 해냈구나, 그런 뿌듯함을 주었다.


작년 12월에 아이를 낳고, 내 목록은 온통 아기에 관한 것들로 꽉 찼다. 젖병 소독하기, 아기 유산균 챙기기, 유축하기, 아기 가재 수건 빨기 등등등...


24시간 아기의 울음과 아기의 냄새와 아기의 웃음으로 가득 찬 시간들을 보냈다. 몽롱한 정신으로 2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출산으로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이 그래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몸뚱이는 여전히 무겁고, 배는 여전히 임산부처럼 나왔지만 적어도 걸을 때 아프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나를 위한 목록을 하나 추가했다.



달리기.


목표는 쉬지 않고 30분을 달릴 수 있는 체력 기르기였다.


임신과 출산으로 녹이 슬 때로 슨 내 몸뚱이를 이제 움직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관절에 기름칠을 하고 예전의 가벼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


처음엔 또 걱정이 되었다. 과연 이 결심이 얼마나 지속될까. 정말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작은 결심들을 매일 반복하여 실행하고 성공했던 기억들이 용기를 주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아주 작은 결심. 아주 사소한 목록, 딱 하나가 추가되는 것뿐이야.'


나는 재작년에 설치했다가 임신 때문에 더 이상 달릴 수 없어서 지웠던 '런데이'라는 어플을 다시 깔았다.


30분 달리기 훈련의 첫날에는 1분간 달리고 2분간 걷기를 5번 반복했다. 1분 달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게 1분 달리기가 1분 30초 달리기로, 1분 30초 달리기가 2분 달리기로... 훈련 한 달쯤이 지났을 땐 이미 나는 쉬지 않고 10분을 달릴 수 있었다.


이틀에 한번씩 남편이 퇴근하면 아기를 맡기고 집 앞 공원에 나가서 달렸다. 그리고 따듯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4월이 되자, 나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달리기는 그 자체로도 기쁨을 주었지만, 아주 작은 목표를 꾸준히 실행하여 전혀 불가능해 보였던 나의 한계를 넘었다는 사실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게 되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게 되면,

나는 나를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게 되면,

다가올 내일의 내가 더 기대된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려면,

우선 눈앞에 1분만 꾹 참고 달리면 된다. 

이것이 내가 달리기로 얻은 가장 값진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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