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공감의 CPR
나는 스스로를 ‘공감의 여왕’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이 눈물을 흘리기 전, 눈 근육이 씰룩이기만 해도 이미 난 울고 있을 것이다. 노력해서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동기화된다. 이런 성격의 좋은 점이라면, 착하다거나, 다정하다거나, 따듯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면서 느끼는 단점은 내가 공감하는 만큼 공감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내면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이 옳다‘라는 무조건적인 공감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는지 알려준다. 가끔은 ’이런 상황도 공감을 해줘야 한다고?‘할 때도 있었다. 특히, 공감의 여왕인 나 조차도 아직까지 100%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바로, 6살 딸아이에게 거짓말로 자신의 아이를 무리에 끼워주지 않고 따돌렸던 아이들을 응징했다고 말하며 공감해 주는 사연이었다. 딸이 엄마에게 그 아이들을 때려달라거나, 혼내달라고 이야기했고, 엄마는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며 어린이집에 가서 그 아이들을 어떻게 혼내주었는지 거짓말로 지어내 말해준 것이다. 작가는 공감의 응급상황도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옳고 그름을 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 또는 아이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어려도 알 것은 다 안다는 걸 부모가 믿어야 한다고. 아직 이 부분은 판단보류를 해야겠다.
이 한 부분만 빼고는 책 전체적으로 어떻게 타인을 대하고, 또 나를 대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특히나, 나에게 적용가능한 부분은 공감에 앞서 미리 상대의 마음이나 생각을 ‘재단’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스스로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도 이런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은 이래서 저랬을 거야!’ 혼자서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착각하고 먼저 판단을 끝내버리기 일쑤다. 내가 맞는 경우도 있지만, 틀리는 경우도 많았다. 남편과 결혼 후 무수히 싸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저 ’ 공감‘을 잘하는 내가 ’ 공감‘이 결여된 남편과의 숱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떠올려보니 내가 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공감이 아니었다. 공감을 무기로, 그의 공감을 강요하고 있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럴 수 있음’을,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 ‘다를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가족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조차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아야겠다 다짐한다. ’ 옳은 말‘이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에게 쉽게 휘두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인지했다. 나는 남편에게 특히 이 무기를 많이 휘둘렀다. 살 빼라, 커피 줄여라, 라면 좀 그만 먹어라, 운동 좀 해라 등등등. 다 그의 건강을 위하는 충고이지만… 10년 넘게 말해도 안 바뀌는데도 꾸준히 충고하는 나도 참 징하다 싶다. 스스로 깨닫고 느끼면 변화하겠지만, 그전에는 아무리 귀에 딱지가 않도록 잔소리를 퍼부어도 전혀 와닿지 않는 빈소리일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혈압이 오르는데 ㅋㅋㅋ 이 충조평판 안 하기가 결코 쉽진 않겠다. 그래도 단 며칠만이라도 책에서 배운 것들을 꼭 실천해 보기로 결심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개똥밭에 굴러도 손가락질하지 않고 ‘무한 공감’해줄 대상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며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갈 힘을 얻는다. 최소한 나의 남편, 아이에게만큼은 ‘무한 공감’의 CPR 기술로 그들을 위험상황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아내, 엄마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