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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뮤 Sep 15. 2024

임신 27주 차 기록

내가 임당이라니....

임신성 당뇨 검사 시기가 다가왔다. 첫아이 때 통과를 했었으니까 별생각 없이 검사를 하러 갔다. 피를 뽑고, 결과는 이틀 후에 문자로 받았다.


혈당수치 140 이상부터 재검을 해야 하는데 나는 무려 194라고 했다. 재검 당첨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가 문득 첫아이 때도 재검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일기를 써오고 있었기에, 분명 그때 당시의 기록이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일기장이었을까 뒤적이다 2021년의 기록이 담긴 일기장을 찾았다.


역시나 짤막하게 그때의 기록이 있었다. 그땐 153으로 재검 당첨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임당검사에 대한 기록이 없는 걸 봐서는 재검에 통과했기에 자연스럽게 잊힌 것 같다.


이번에도 재검에 통과할 수도 있지만, 수치가 너무 높아 걱정이 많이 되었다. 걱정이 엄습할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네이버 맘카페에 들어갔다. 역시나 비슷한 주수의 임산부들이 각자의 경험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수치였지만 재검에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몇 개 발견했다. 자그맣게 숨을 내쉬며 '그래, 아직 몰라. 희망이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개미만 한 목소리로 내 마음 어디선가 '확률은 있지만 아주 낮지'하고 초치는 소리를 했다.


임당이면 혈당관리를 출산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타이밍에 <탄수화물과 헤어질 결심>이라는 책을 읽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그래, 이번 기회에 제대로 관리해서 건강해지는 거야! 안 그래도 출산 후에 하려고 했는데 몇 달 앞당겨지면 완전 럭키비키네!'하고 최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보려 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재검하러 가서 한 시간마다 3번을 채혈하는데 혹시나 혈당이 조금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중간중간 기다리면서 자꾸 걸고 몸을 움직였다. 아마, 내 안의 어딘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임당만은 피해보고 싶은 자아가 마지막 몸부림(?)을 친 거겠지.


내 마지막 몸부림은 임당 확정 연락과 함께 전혀 쓸모가 없었음이 밝혀졌다.


아아.

내가 임당이라니....


연락을 받고, 일주일 후 다시 병원을 찾았다. 임당관리에 대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채혈기 사용법, 임당 식단관리법, 도움 되는 어플과 사이트 정보 등을 듣고, 마지막으로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아기는 주수대로 잘 크고 있었고, 흑백으로 얼추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온 것이 보였다. 첫째 때는 초음파를 보면서 볼살이 통통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둘째는 벌써 그런 게 보일 정도라니... 임당이라 슬프지만, 포동한 볼살의 아가가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했다.


다만, 앞으로 식단 관리를 잘해서 거대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오늘은 어제 주문한 혈당측정기가 도착했다. 처음엔 사용방법을 읽어도 어버버버 잘 못해서 손가락을 대여섯 번 다시 찔러야 했다. 그래도 딱 한 번 해보니 그다음부터는 한 번에 척척 하게 되었다.


아침 공복은 역시나 기준치를 넘겼다. 95 미만이 기준인데 97... 그래도 많이 높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침은 못 먹고, 추석 전 장을 봐야 해서 대형마트에 가게 되어 거기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랑 같이 나눠먹을 메뉴를 고르다 보니 버섯카레라이스를 시켰는데 흰쌀밥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 반, 나 반 이렇게 나눠먹고 장을 보고 돌아와서 또 혈당을 쟀다. (나는 아침공복 1회 그리고 3끼 식사 2시간 후 이렇게 4번을 재서 혈당을 기록해야 한다)


142...


기준이 120인데 또 혈당이 많이 높았다. 인슐린 주사까지는 정말 맞고 싶지 않은데... 이러다가는 다음번 진료 때 무조건 주사처방을 나갈 것 같다.


저녁식사는 정신 차리고 탄수화물을 아예 뺐다. 삼겹살에 샐러드 그리고 치즈 이렇게만 먹었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당'섭취가 없어서인지 자꾸 단 게 당겼다. 입가심으로 사과맛 요구르트 음료를 하나 마셨다. 그제야 뭔가 먹은 느낌이 들었다.


식후 집청소를 싹 하며 움직였다. 그리고 또 2시간이 되어 혈당을 쟀다. 이번엔 97! 와 역시 탄수화물을 안 먹었더니 안정권이다. 휴우.


내일부터 본격 추석 연휴인데 악착같이 식단조절을 잘해봐야겠다. 둘째 임신은 뭔가 산 넘어 산 느낌이지만 벌써 거의 끝이 보인다! 이제 길어야 3달! 만삭처럼 벌써 배가 너무 무겁지만, 이 무게를 달게 견뎌야겠다. 우리 볼 통통 아가와의 만남을 고대하며 건강한 엄마로 거듭나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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