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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stolcaffe Mar 02. 2021

스콘은 질리지 않아

똑같지만 똑같지 않게

코로나의 여파로 재택근무하는 날이 많았다. 나는 재택근무가 성향에 잘 맞지 않는다. 집에서는 작업을 열심히 해도 열심히 한 것 같지 않고, 작업이 끝난 후 쉴 때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일의 성과와는 별개로 정신이 피폐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 당시 근무했던 회사가 원격 근무가 가능했기에 홍길동식 작업 환경을 즐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서 일해볼까?" 라는 생각에 항상 설레었다. 주로 수도권 지역의 창업 센터 내 무료 코워킹 스페이스나 무중력 지대와 같은 청년 공간을 이용했다. 또한 일주일에 1~2회는 "지하철 노마드" 라는 활동을 했는데, 4호선 종착역 (당고개) 부터 시작해서 역 부근에 일할 공간을 찾아 작업을 하고 오는 것이다. 그러나 수유역까지 진행 된 상태에서 코로나가 시작됐고 더 이상 지하철 노마드는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이런 노마드 스타일의 작업 환경은 너무 재밌지만, 나름 고충도 있다.

일단 코워킹 스페이스의 같은 경우에는 간혹 공지 없이 휴관을 할 때가 있다. 또한 이용은 가능하지만 코워킹 스페이스 특성상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서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카페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콘센트의 여부가 중요하다. 물론 작업을 위한 내 입장만을 고려한 이기적인 지표지만 목적지로 정한 곳을 방문했는데 콘센트가 없다면, 또 다른 공간을 찾아다녀야 하는 동안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또한 카페 입장에서는 테이블 순환이 많이 발생해야 하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적당한 시간 정도만 이용해야 한다.


업무가 많아 이동시간을 최소화해야 할 때는 집에서 멀지 않은 카페에서 작업을 했다. 분명한 것은, 어디든 나가서 작업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밖에 나가서 작업하는 곳을 좋아하더라도, 가끔씩은 집에서 일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나도 사람이니까 나가기 귀찮을 때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몸이 너무 안 좋은 날을 제외하면 좀 귀찮은 날에도 무조건 가방을 챙기고 억지로라도 나가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습관이 생긴 것은 한창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선생님께서 "일단 밖으로 나가봐라" 라는 조언을 해주신 뒤로부터 이다. 그 당시에는 외부와의 접촉 자체가 두려울 때라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나가기 힘들어하는 거 잘 알아요
그런데 나가서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라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생각거리를 가지고 갈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다짐해오겠다는 목적도 없어도 돼요

그저 가볍게 나가세요
그냥 지나가는 차도 보고, 나무나 꽃도 한 번씩 보고 다른 사람들도 보고, 바람도 쐬라는 거예요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집순이 집돌이가 안좋다는 것은 아니니 확대해석 하진 마시고요.

그저 수민 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서 조언드리는 거예요
가끔씩 집에서 온전한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오직 '회피성' 으로 무조건 집에 있으려 하는 것은 악순환일 뿐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나가기 힘들어하는 거 잘 알아요
지금 이 말을 들으면서도 "나가기 어려운걸 왜 억지로 하라는 건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해봐요. 일단 나가보세요


분명 밖에 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어떤 변화가 생긴 다는 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여러 번 시도를 해보니, 생각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 밖에 돌아다녀보면 많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보게 되는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볼뿐이었다. 남들도 지나가면서 나를 보게 될 텐데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갈 것이다. 설령 속으로 저 사람에 대한 어떤 생각이 들었다고 한들 잠시 뿐이고 생각은 자유니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듯 점점 남의 시선에 대해 무감각 해져갔다.


* 버스를 타기 위해 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어가는 모습, 항상 열심히 고생해주시는 택배 기사분들 등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동기부여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은 그저 일상 중 하나일 뿐인데 나는 그들로부터 '선한 영향력' 을 받게 된 셈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적어도 드라마틱하게 자존감이 상승되진 않더라도 더 이상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다.


* 나는 예쁜 꽂을 보거나, 화려한 장관을 보면서도 다소 무감각한 편이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이런 것들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니 크게 동요되는 건 여전히 없지만 기분이 좋아지긴 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있었지만 공기도 정말 좋고 하늘도 맑고 그런 완벽한 날에 밖에는 그저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지나가다 꽃이 보이면 가끔 사진도 찍으며 지나가기도 하고 멋진 풍경을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졌다.




거리두기 단계가 하향되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하기는 조심스럽다. 재택근무는 나에게 영 맞지 않고 그래서 요즘엔 매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항상 같은 카페를 다닌다. 마스크를 항상 쓰고 있어야 하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장시간 쓰고 있는 것엔 크게 불편함이 없다.


이 카페는 동편마을 카페거리에 위치해 있다. 로스팅과 스콘으로 이 동네에서는 꽤 이름난 카페이다.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플레인 스콘을 주문한다. 이제는 메뉴를 따로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결제할 카드만 건네드리면 된다.


그리고 스콘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면, 일과는 시작된다. 스콘은 어제 만들어 놓으신 스콘을 주실 때도 있고, 남은 게 없다면 바로 스콘을 만들어 주신다. 두 종류의 스콘은 모두 맛있지만 갓 구워낸 스콘은 정말 맛있다. 그렇게 내 자리 한쪽엔 항상 스콘이 놓여 있고, 매일 스콘과 함께 한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일하는 사진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 항상 같은 카페, 그리고 항상 스콘이 놓여 있는 사진이 업로드된다. 사진 한 장으로 의미 전달이 쉽진 않지만 "난 재밌게 개발하고 있어요!" 와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지 않아 보이는 일상" 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한때는 인스타 프로필에도 "똑같지만 똑같지 않게" 라는 슬로건을 달아 놓은 적도 있다.


인친 분들은,


"오늘도 역시 스콘이네요 :)"

"스콘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스콘 매일 먹으면 안 질리세요?"


이외에도 다양하고 재미난 반응을 주신다.


나는 같은 음식을 수차례 먹어도 질리지 않는 편이다. 특정 식당에서 한 메뉴에 꽂히면 그 식당에 갈 때면 그 메뉴만 먹는 편이고, 예전에는 돈가스가 너무 좋아서 몇 달 내내 한 끼는 무조건 돈가스를 먹었더니 살이 많이 찌기도 했으며 살을 빼기 위해(?) 세 달 동안 점심을 비빔밥만 먹은 적도 있다. 비빔밥이 다이어트에 크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세 달 동안 살을 엄청 많이 뺐다.


사실 이 카페에는 디저트의 종류는 많지 않다. 스콘, 바게트, 갈릭 치즈 브레드 정도일 뿐이다. 바게트는 양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편이고, 브레드 종류는 혼자 먹기엔 양이 많은 편이다. 스콘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이것은 항상 스콘만을 주문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만의 반복된 일상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취미를 가져보려 하거나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며 나름 삶의 낙을 찾는다.


집 - 카페(스콘)를 반복하는 일상. 

나 또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나의 이러한 일상을 알고 있다


물론, 집 - 직장에 비하면 나는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로운 공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복에 겨운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똑같은 일상이더라도 똑같지 않다고 마음먹으려 노력한다.

"그 날의 감정" 만큼은 매번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크리티컬 한 이슈를 해결하여 일에 성취감에 기분이 좋고,

어떤 날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찝찝한 기분으로 퇴근을 하기도 하며,

어떤 날은 혼자 일하는 것 자체에 고독함을 느끼기도 한다.


귀찮아서 건너뛸 때도 있지만 하루의 감정 기록을 해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기록한 것을 살펴보면, 때로는 비슷한 에피소드인 것 같은데 느꼈던 감정이 다른 것을 보면 재밌기도 하다. 그리고 "그날의 나" 와 "오늘의 나" 는 분명 다름을 느낀다.


그것이 긍정적인 "나" 라면 성취감을 느낄 것이고

그것이 부정적인 "나" 라면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각각 목적은 다르더라도 똑같은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변화하는 "나" 의 모습에 삶의 낙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스콘이 질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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