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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부인 Jan 20. 2020

여행이 나를 변하게 한 것 1

합리적인 소비 vs 감성적인 소비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택시 마니아였다.

내 주변에 조금이라도 친한 사람들은 웬만큼 알 정도의 마니아, 더불어 전도사이기도 했다.


뉴욕에서 지낼 때는 학원이 끝나면 매일 백화점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잘 맞는 쇼핑메이트 언니도 있었겠다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쇼핑의 추억이었다.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크게 고민 없이 사는 편이었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먹고

대중교통보다는 택시를 타는 게 평범한 나의 일상이었다.


이런 일상이 결혼 후에 조금 변하긴 했다.

부모님 집에서 편하게 먹고 자던 시절이 끝나서일까 아니면 집안의 재정 담당을 맡았다는 책임감 때문일까

지갑 열리는 빈도가 잦아들었다.

10번 타던 택시도 5번으로 줄였고 쇼핑은 연중행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물욕을 애써 참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행이 나를 바꿔버렸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와이프가 달라졌어요'다.


매일 먹고 자고 이동하는 데 돈이 든다.

지갑이 열릴 때마다 정말 이 가격이 합당한 지 꼭 지불해야 하는 항목인지 고민하고

먹을 것을 살 때도 남게 사지 않으려 하고 현지 물가 대비 비싼 품목이 아닌지,

충동적으로 장바구니에 담는 게 아닌지 수도 없이 고민한다.



모로코 길거리에서 오렌지주스를 사 마실 때 일이다. 그 자리에서 직접 짜주는 오렌지주스가 600원이다.

하지만 500원에 주면 안 되냐고 협상을 한다.

단 돈 100원을 깎는 날 보며 남편은 저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100원은 뭐하러 깎느냐라고 한다.

그럼 난 지지 않고 100원이 10번 모이면 1000원, 100번 모이면 만원이라고 응수한다.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 남편이 한 마디 던진다. '옛날 우리 와이프 어디 갔지!?'



이탈리아 볼로냐 파스타 집에서 일이다. 샐러드를 두 접시에 나눠준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파스타도 2 접시가 나왔다. 샐러드처럼 나눠준 거라 생각했는데 파스타는 2개가 주문된 것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 쓰지 않아도 될 6유로를 썼다는 사실이 속상해 엉엉 울었다.

이태리 말을 할 줄 모르는 나를 원망하고 두 번, 세 번 주문을 확인하지 않은 나를 원망하고 맛있게 먹었음에도 만원도 안 되는 돈 때문에 울고 있는 내가 속상하고...



파리 여행 때 일이다.

워낙 물가가 비싸기에 조금이라도 비용절감을 하기 위해 우리 지출 항목에 '대중교통'은 없다고 선언하고 근교로 나가는 일이 아니고서는 계속 걸어 다녔다.

하루에 3만보를 넘게 걷기게 다반사였다.




현금, 카드 상관없이 결제한 영수증은 바로 확인하고

잔돈은 화폐가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꼭 그 자리에서 확인한다.

하루하루 먹는 거 자는 거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까지 돈이 드는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

기록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리뷰도 한다. 어떤 항목에서 지출이 많았는지 정말 꼭 필요한 돈만 쓴 것인지 꼼꼼히 따져본다.



그렇게 2년의 생활이 끝이 났다. 다시 한국에서의 삶이다.

너무나 익숙한 이곳의 삶이, 30년이 넘게 살아온 과거에 내가 녹아져 있는 삶이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택시를 타지 않는다.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대중교통도 타지 않는다.

외식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물건을 사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안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먹고 싶은 것들을 안 먹고 필요한 것들을 안 사고 참는 것이 아니다.

소비는 하되 그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은 집에서 만들어 먹고

와인이 마시고 싶을 때는 가성비 좋은 와인을 사서 집에서 분위기를 내고

영화가 보고 싶으면 헌혈을 하고 받은 영화상품권으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장을 볼 때는 마트별 할인을 잘 챙겨 더 저렴한 곳에서 산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부부가 같이 상의 후에 구매를 결정한다.


여행은 나에게 감성적인 소비와 이성적인 소비가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과거에 나는 얼마나 감성적인 소비의 노예였는지 일깨워 주었다.

여전히 나는 감성적인 소비를 하기고 하지만

더 이상 돈이 지갑에서 기분 따라 나오는 종이가 되지는 않고 있다.


돈을 쓰는 사람은 나이기에 돈이 나를 컨트롤하지 않도록 내가 돈의 올바른 주인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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