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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부인 Jun 30. 2020

Where is my Fifty?  - 고작 3000원

길 위에서 246일째

 남편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기로 한 날이다. 


 이집트의 삐끼와 그들의 사기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한지라 숙소 문을 나서기 전부터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삐끼들이 붙기 시작했다. '피라미드 가이드를 해주겠다, 낙타를 싸게 탈 수 있다, 피라미드 티켓 사는 곳을 안내해주겠다.' 등등 정신없이 말을 쏟아낸다. 


 싫다는 말을 끝없이 외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떤 남자가 허름한 시멘트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저곳이 티켓 오피스라고 한다. 하지만 그곳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티켓 오피스와는 너무 달랐고 가짜 티켓 사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약간 한심하다는 말투로 저곳이 티켓 오피스가 맞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알아본 티켓 오피스 사진을 보여주며 '이곳이 내가 알고 있는 곳이고 나는 여기로 갈 거다.'라고 하니 그곳은 정문이고 여기는 후문이라는 것이다. 뭔가 수상했지만 자세히 보니 티켓 창구에 직원도 있고 그 안쪽으로는 보안 검색대와 보안요원도 보였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마음은 풀리지 않았지만 일단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티켓도 진짜 같아 보이고 가격도 정확하고 분위기 또한 거짓말하는 듯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 누그러트리고 티켓을 계산하려는데 직원이 잔돈이 없다고 한다. 240파운드를 계산하기 위해 250파운드를 냈는데 잔돈이 없다니;;;; 설상가상으로 피라미드를 구경하고 나오면 잔돈을 마련해서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절대 안 된다고 하니 약간 화를 내며 정 싫으면 나보고 잔돈을 바꿔 오라고 한다. 


 내가 꼭 바꿔오겠다며 남편을 오피스에 세워두고 근처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 사장님께 50파운드 지폐를 잔돈으로 바꾸고 싶다고 하니 옆에 슈퍼에서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렇게 슈퍼로 들어가려는 찰나 어떤 남자가 나에게 잔돈 바꾸러 왔냐며 말을 걸고 순식간에 나를 슈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내 50파운드는 슈퍼 주인에게 건네지고 두 사람은 뭐라 뭐라 아랍어로 이야기를 한다. 일단 기다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있는데 슈퍼 주인이 이 남자에게 담배도 주고 과자도 준다. 그러면서 내 돈은 줄 생각이 없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간신히 붙잡고 있던 평정심을 놓쳤고 그 작은 슈퍼는 들썩였다.


" Where is my fifty? "


가게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소리.


숙소 입구에서부터 어떻게든 사기를 치려고 따라붙던 삐끼들 그리고 내 10파운드를 탐낸 티켓 오피스 직원까지 모두에게 쌓였던 화가 용솟음처럼 뿜어져 나와버렸다. 순간 가게에는 적막이 흐르고 소리친 나도 슈퍼 사장님 그리고 나랑 같이 들어갔던 남자 모두 놀랐다. 서둘러 사장님은 나에게 진정하고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서둘러 50 파운드를 잔돈으로 바꿔주었다.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버려 멋쩍어진 나는 '땡큐' 한마디를 남기고 급하게 슈퍼를 빠져나왔다.


어쩌면 티켓 오피스를 알려준 사람들도 슈퍼 사장님도 슈퍼에 나를 데리고 들어간 사람도 나의 돈을 탐냈을 수 있다. 진짜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은 더운 날씨에 1km가 넘는 거리를 걷지 않도록 가까운 티켓 오피스를 알려준 것이었고 물건 하나 사지 않은 나에게 돈을 바꿔줘 잔돈 시름을 덜게 해 주었다.

반면에 나는 고작 몇 천 원 되지 않는 돈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사기꾼 취급하고 소리까지 질러댔다.


스스로가 너무도 창피한 일이다.

남편은 이집트 상인들이 악명이 높기 때문에 생긴 경계심 때문이라 나를 위로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 또한 그들을 돈으로 바라본 것이다. 돈에 눈에 멀어 그들의 친절한 진심을 보지 못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점점 돈에 예민해지는 것을 느낀다. 액수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내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는 것 같다. 그러지 않으려고 늘 애를 쓰지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직은 한 없이 모지란 여행자는 착한 이집트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댐을 교훈 삼아 다음번엔 "돈"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반성한다.




p.s 다음에 피라미드를 보러 간다면 슈퍼 사장님께 음료수 한 잔 꼭 사드리고 와야지 마음을 먹으며 이렇게 이집트에 다시 갈 구실도 하나 만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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