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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Oct 31. 2021

후배가 생기고 깨달은 것


  회사 생활을 10년쯤 하는 동안 후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작은 회사라도 신입 사원은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업무 지시를 하고 보고를 받는 후배가 생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마케팅팀에 입사하여 처음에는 브랜드 매니저인 팀장의 오더를 받아 일을 했고,  약간의 경험치가 쌓인 후부터는 특정 브랜드를 홀로 담당했다. 작년 말부터 담당 업무의 범위가 커졌는데, 그때 회사는 함께 일을 하라며 후배 한 명을 붙여줬다. 사수와 부사수, 파트장과 파트원의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타고난 성향이 개인적이어서 그런지, 홀로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아주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은 아니라서 그런지 후배와 케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제대로 사수 노릇을 하고 있는 건가?’ 같은 생각부터 ‘내가 세심하게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네.’ 같은 마음마저 주기적으로 찾아와 제대로 좀 하라는 충고를 날리는 걸 보면 선배 노릇을 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1. 일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진하게 묻어난다. 


  부사수가 생기기 전에도 팀에 나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가 하나 있었다. 주간 회의를 통해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공유받고는 있었지만, 함께 하는 업무가 거의 없다 보니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슈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면밀하게 알지 못했다. 막연히 빠릿빠릿한데 꼼꼼한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사수가 되어 일을 시키고 그것에 관한 보고를 여러 차례 받고 나니 이 사람이 어떤 태도로 일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회사에 다니는지 진하게 느껴진다. ‘아, 이 친구는 일을 적당한 선에서 무리하지 않고 하는 영리한 친구구나. 대신 어려움과 힘듦이 예상되는 일에는 하는 시늉만 내는 경향이 있네. 이 친구가 자기만족, 자기 성취보다는 타인의 평판에 신경 쓰는 편이구나.’ 


  일하는 태도가 체취처럼 자연스럽게 배어난다는 걸 경험하자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내가 가진 태도, 마음가짐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고스란히 가닿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어떤 존재로 대우받느냐 같은 것이 아니라 올바른 태도로 일하고 있는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지, 같은 마음가짐이겠네.     



2. 역으로 나에 대해 선명히 알게 된다. 


  누군가의 일하는 태도와 방식을 목도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와 비교를 하게 된다. 이 친구는 나와는 다르게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구나.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좀 더 자세하게 공유해주는 편이고. 


  후배와 일하는 경험은 나를 선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간 일하면서 내가 가진 재주, 재능이 별로 없음을 한탄해왔는데 비교 대상이 생기니 그래도 몇 가지 장점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을 벌이려고 하는 태도가 내가 가진 장점 중에 하나라는 것. 잘하겠다는 욕심이 있고 이왕 하는 거 쪽팔리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내가 가진 좋은 면모라는 것. 내가 가진 단점도 더 또렷해진다. 그 단점의 목록은 무궁무진하지만 하나만 적어보려 한다.      



3. 역시 나의 리더십은 빈곤하다


  예전에 좋은 리더란 없고 맞는 리더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와 가장 잘 맞는 상사가 누군가에게는 무능한 리더로 평가받는 걸 보면서 그런 단상을 품었던 것인데, 그분은 업무 지시를 큼직큼직하게 주는 편이었다. A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한 번 짜 봐. 신제품 아이디어를 몇 개 가져와 봐. 일의 범위가 열려 있는 지시는 내게 잘 맞았다. 나는 백지 같은 일에 나만의 낙서를 해가며 나의 생각을 채워가는 것이 좋았다. 반대로 그분 밑에서 일했던 직원 몇몇은 그런 지시의 두루뭉술함을 거북해하기도 했다.


  좋은 리더가 있는 게 아니라 맞는 리더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내게 유효하지만, 후배와 일을 하며 더해진 부분도 있다. 리더의 좋고 나쁨도 맞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것. 좋은 리더라면, 유능한 리더라면, 현명한 리더라면 사람의 성향에 맞춰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다. 상대방이 주체성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맞춰 열린 일을 주고 상대방이 압박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혹독하게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스타일에 맞춰 유연하게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사람이 좋은 리더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나는 그런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라고도 느꼈고. 뭐. 리더십이 빈곤한 거야 대학생 시절 축구동아리 주장을 하면서 이미 체감했던 터라 그리 놀라운 발견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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