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받은 건강 검진 결과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상복부 지방간 소견입니다. 간세포에 중성 지방이 과다 축적된 상태이며, 과식, 비만, 운동 부족 등이 원인입니다. 적당한 운동과 체중 조절이 필요하며 증상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혈관 내막에 혈중 콜레스테롤이나 지질 성분이 침착하여 융기된 상태이며 생활 습관 개선과 적당한 유산소 운동을 하십시오.
10대부터 20대까지 축구에 푹 빠져 살았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운동을 했던 터라 나름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운동과 이별한 지 7년 만에 상황은 반전됐다. 별 내용 없이 깨끗했던 건강 검진 종합 판정란에는 이런저런 증상들과 조언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자신했던 건강은 영원하지 않았다. 믿음, 신뢰, 자신감 같은 건 이렇게 한 방에 훅 가는 법이다.
63 킬로그램.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무게다. 스무 살 청춘의 체중이었다. 대학 4년 내내 몸무게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매년 500그램에서 1000그램씩 꾸준하게 불었다. 나이가 들면 광대뼈도 자라는지 갸름했던 얼굴도 점점 넓적해졌다. 여자친구는 내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을 보고는 “그사이 얼굴형이 완전히 변했는데,”하며 웃었고 내가 봐도 동글동글한 지금의 얼굴엔 그 시절의 직선적인 샤프함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 한번 그 시절의 몸무게로 돌아가 보자며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몇 달 후면 웨딩 사진을 찍게 되니 시기도 완벽했다. 사실 다이어트의 원리는 무척 단순하다. 내가 먹은 칼로리보다 내가 쓴 칼로리가 많으면 살은 빠진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몸무게는 주는 것이다. 그간 일주에 한 번, 30분 남짓 동네 한 바퀴를 걷고 뛰는 것이 내 유일한 운동이었는데 그걸 주 3회로 늘리기로 했다. 식탐이 느는지 가끔 이해할 수 없이 폭식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도 최대한 자제해보자고 다짐했다. 8월 초의 결심이었다.
건전지 수명이 다 되어 먼지만 쌓이고 있던 체중계의 배터리도 교체했다. 올라가 보니 70.6 킬로그램. 그 후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몸무게를 기록했다. 운동 횟수를 늘리고 폭식을 하지 않자 몸무게는 빠르게 줄었다. 3주 정도 지났을 때 체중은 2 킬로그램이 빠져있었다. ‘후후, 다이어트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했는데 속상하게도 그 뒤로 한 달간 몸무게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치팅데이라고 자기변명을 하며 폭식을 하는 날도 (자주) 있었기에 오히려 몸무게가 느는 시기도 있었다. 변화가 더디니 같은 방식을 계속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식단 조절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었다.
이번 주부터 저녁을 계란으로 바꿨다. 계란을 떡볶이에 넣어 먹거나 짜파게티와 함께 먹을 때는 몰랐는데, 계란은 정말 맛대가리 없는 음식이었다. 감칠맛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놈. 씹는 즐거움이라고는 한 개도 없는 냉정한 자식. 계란 두 알에 조그만 떡갈비 한 쪽, 바나나 하나를 며칠간 저녁으로 먹어 본 결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이 인생의 커다란 행복이라는 배움을 얻었다. 인터넷에는 탄수화물을 끊고 약간의 체중을 뺐지만 그 이상의 짜증, 우울감, 무기력증을 얻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식단 조절을 시작하고 내가 느낀 감정도 똑같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고기 굽는 냄새와 된장찌개의 향기가 이토록 매혹적이었던가. 나는 잎새에 이는 음식 향기에도 괴로워하며 고통스러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통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요즘 속으로 자주 되뇌는 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그간 몇 차례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별 효용이 없었다. 그 과정에 따르는 고통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탓이었다. ‘오늘 하루는 괜찮겠지. 모임이 있는데 어쩔 수 없잖아.’ 같은 핑계와 합리화로 몸무게는 잠깐 빠지는 듯하다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변화를 위한 고통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견뎌보려고 한다. 12월 31일에는 목표 몸무게에 도달해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