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내린 가장 큰 선택은 스물아홉 살에 대기업을 퇴사한 일이 아닐까 싶다. 스물여섯에 입사를 했던 나는 큰 조직에서 하는 작은 일이 싫었고 스스로 더 크고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청춘의 용기와 객기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지만 어쨌거나 꽤나 오랫동안 고민을 하던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결정을 해야겠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퇴사를 결심할 즈음 읽었던 도서 중 하나가 ‘10-10-10’이라는 책이었다. 선택을 할 때 10분 후, 10달 뒤, 10년 이후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것이 책이 주요 골자였다. 퇴사를 하고 10분 후에는 기분이 아주 좋겠지. 암 그렇고말고. 10달 뒤에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마음이 심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져 있을 거야. 이게 책을 읽으면서 자주 생각한 내용이었고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비록 8년이 지난 지금 선뜻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졌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이후 두 곳의 회사를 거쳐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으로 왔고 이곳에서 첫 회사였던 대기업에서 보낸 시간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선택’은 자주 내 사색의 주제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좋은 선택이란 어떤 선택이지? 어떤 날에는 나쁜 선택은 없고 나쁜 후회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100% 완벽한 선택이라는 환상이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에는 선택은 선택이라 쓰고 감당이라 읽는 것이라는 일기를 쓰기도 했고.
요즘 ‘선택’에 관해 자주 하는 생각은 선택은 두 가지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이고 그다음은 ‘그걸 위해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무엇인가?’이다. 하고 싶은 것이 글을 쓰는 것이라면 적어도 하루에 한두 시간은 뭐라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고 그런 시간이 몇 날 며칠이 아니라 한두 해 정도는 쌓여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악기 연주라면 마찬가지로 학습을 위한 지루한 시간을 견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책 <10-10-10>에서는 다룬 건 선택의 첫 번째 층위, 즉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경험을 통해 배운 건 두 번째 층위, 즉 그 선택을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것, 내가 감수해야 할 것을 곰곰이 따져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건 선택을 미루고 변화를 주저하기 위한 과정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과정이다. 이 선택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적어 보면 그 구체성만큼 선택의 결과가 가져올 막연한 두려움의 크기도 작아진다. 그렇게 되면 조금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간으로 지금 상황과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버지가 하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 그 선택으로 인해 감당하고 감수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천천히 따져보았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지만 분명한 건 아버지는 하고 싶은 것에 맞춰 제대로 선택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몫도 충분히 해내실 수 있고 감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선택 잘하셨다고 응원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