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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Oct 23. 2022

8월 27일 토요일 : 입원 2일 차

  아침 7시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장겨울 선생 정도의 직급으로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방문했다. 전공의와 레지던트 중간 정도의 위치랄까? 가족 중에 류마티스성 질환을 앓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답했다. 심근염의 원인 중에는 바이러스성이 가장 흔하지만, 면역성 원인도 있어 질문했다고 한다. 이어서 밤사이 산소 포화도 수치가 많이 좋아져서 점심 이후부터는 산소 공급기를 다시 얇은 형태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의 말을 들었다. 오늘 밤엔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후에 간호사가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잠깐만이라며 건넸다. 핸드폰 영상 속에는 속상한 얼굴을 한 아내가 보였다. 그 뒤로는 부모님, 장인어른, 장모님, 매형까지 와 있었다. 깜짝 놀랐다. 대전이랑 파주에 계셔야 할 분들인데... 아들, 사위가 걱정돼 새벽부터 일어나 출발하셨겠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빠, 몸은 좀 괜찮아?”

  “응.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부모님들께 다 연락드렸구나. 이쪽저쪽 챙긴다고 고생 많았겠어.” 

  “어제 오빠 병실로 들어가자마자 연락드렸고 다들 걱정하고 속상해하셨어. 면회가 안 되는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아침 일찍 와서 담당 교수님이라도 봐야겠다고 하셔서 오늘 일찍 오신 거야.”

  부모님과도 몇 마디 나눴다. 

  “몸은 좀 괜찮니? 중환자실에서 생활하는 게 무척 고된 일인데, 잠은 좀 잤고?”

  괜한 걱정을 더해드리기 싫어 거짓말로 답했다. 

  “간밤에 잠은 잘 잤고 확실히 어제보다 좋아지고 있는 게 느껴져. 별 큰일도 아닌데 뭐하러 여기까지 오셨어...” 

  핸드폰 화면으로 가족들의 슬픈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화면 속에는 병원복을 입고 굵고 투박한 산소 공급기를 차고 꾀죄죄한 얼굴로 앉아 있는 내 모습도 조그맣게 보였다. 낯선 모습을 보는 게 가족들에게도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눈물이 살짝 나 코가 막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마 티는 별로 안 났을 것 같다. 산소 공급기 덕분에 처음부터 코맹맹이 소리가 났으니까. 

  뭐 필요한 거 없냐는 아내의 물음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책 몇 권만 넣어줄 수 있을까? 책장에 꽂혀 있는 <베를린 일기>랑 <콰이어트> 챙겨주면 좋겠어. 그리고 책도 책인데, 나 샤인 머스켓이 너무 먹고 싶어...” 

  위중한 상황에 샤인 머스켓 드립이 적절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 점심부터 샤인 머스켓이 너무 먹고 싶었다. 어제 병원 가는 길에 마트가 하나 있었는데, 입구 앞 냉장고에 샤인 머스캣이 탐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 때문인 건지 아니면 입맛이 없어 병원 조식을 한두 숟갈 뜬 게 전부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온 몸의 세포들이 샤인 머스캣의 달콤함을 갈망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이어서 담당 교수님이 회진을 왔다. 심근염에 의한 심부전이 나의 증상이라고 말했다. 심장 근육에 염증이 생겨 심장 기능이 떨어진 상태라는 설명이었다. 폐렴 증세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것인지 묻자 폐렴은 심근염에서 이어진 질환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해보고 있다는 말도 함께 덧붙이면서. 어쨌거나 심근염이나 폐렴의 회복이 빠르진 않다고 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치료받으라는 말을 남겼다.       


  점심을 먹고 나자 낯선 의사 한 명이 나를 찾아왔다. 약간 마른 체형에 살짝 건들거리는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대학병원 응급실로 빨리 가보라고 권했던 의사가 자기 대학교 후배라면서 자신을 소개한 다음 물었다. 

  “후배네 병원 가기 전에도 병원 여러 군데를 갔었던데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 열이 났으면 거기서도 X-레이를 찍어봤을 법한데, 왜 안 찍었어요?”

  “저는 코로나에 걸린 줄 알고 내과 전문 병원을 간 게 아니라 가정의학과를 갔거든요. 그러다 보니 코로나 검사만 받고 나오거나 수액 한 방 맞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는 왜 그런 곳을 갔냐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한 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하루 이틀 차이로 살았어요.”

  무거운 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각도를 바꿀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잊고 있던 꿈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고 앞으로의 인생은 보너스니 봉사에 여생을 쏟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가벼운 말이었다. 하루 이틀 차이로 살았다는 말이 묘하게 실감 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내게 죽음이 먼 미래의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건강한 편이었고 잔병치레도 별로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심근염으로 난생처음 중환자실에 입원하긴 했지만, 입원 전에도 아파 죽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지금도 입맛이 돌아오는 게 곧 보통의 상태로 회복할 것 같다. 내게 죽음 앞의 생이란 수십 년 넘게 남아 있는 아득한 무언가다. 

  그래서 이 말을 의식적으로 자주 꺼내 보려고 한다. 내가 죽음과 제법 가까운 곳까지 갔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죽음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 끝을 생각하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 말이 내 삶을 극적으로 바꾸진 못하겠지만, 서서히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살아가는 방향을 바꾸는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건 군대에서였다. 소통에 제약이 있고 무료하면 사람은 결국 펜을 들게 된다. 당시에 여자 친구도 없던 내게 편지의 대상은 친구였다.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친구들과 글을 통해 서러운 처지를 한탄했고 가끔은 휴가를 맞추자며 일정을 조율하곤 했다. 지금도 당시의 편지를 가지고 있는데 다시 읽기 쑥스러울 정도로 따뜻함과 풋풋함이 묻어나 웃기면서도 슬프다. 

  중환자실에서의 생활도 비슷한 환경이기 때문에 오후부터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간호사에게 펜과 종이를 부탁해 그간의 이야기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내가 밖의 이야기가 궁금하듯이 아내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싶을 것 같아 여기서 듣고 경험한 것을 상세하게 적고 있다. 이러다 점심 메뉴가 뭐였고 맛이 어땠는지 식사평까지 쓰게 될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할 수 있다는 건 편한 일이지만, 편하기에 소중함을 잊고 살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결핍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중환자실에서 편지를 쓰며 아내를 향한 애틋함을 자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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