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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Dec 01. 2019

어제 받은 문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내 미래는 내 앞날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걱정되었는데 강사님 강연 덕분에 희망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받은 문자. 내 강연을 들은 학생이 담임 선생님에게 보낸 것이고 다시 선생님이 나에게 보내주셨어. 초청 강연에서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며 선생님이 아주 기뻐하시더라고. 나 또한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는데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더라고. 내가 왜 화가 나있었는지는 이 글을 다 읽어보면 알게 될 거야. 아 학생들 때문은 아니야. 절대 아니야.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것은 폭설이 내린 날 출근 시간에 교대역 계단으로 내려서는 것처럼 답답함과 부담감이 가득할 수밖에 없어. 호르몬과 호기심이 불규칙 난수로 교차하는 연령대의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한다는 것. 때론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벌을 받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날 쿵쾅거렸던 마음은 학생들 때문이 아니었지. 아니 학생들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교실에서 강당까지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주었고 신나는 공연 다음 순서였기에 분위기가 다운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강연에서도 적극적인 호응을 해주었어. 하지만 학생들이 웃고 박수를 칠 때마다 내 마음은 급하기만 했어.

이날 강연은 비 오는 날 어느 아침 제주도 모 고등학교에서 열렸는데 예정대로라면 이곳에서 강연을 끝내고 바로 3킬로 미터 정도 떨어진 모 IT 업체로 이동해서 강연을 해야 하는데 일정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거야. 

내 순서 다음으로 유명 연예인의 강연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지각을 하고 만 거지. 대기업 후원으로 펼쳐지는 이 행사에서 역시 핵심은 바로 '연예인'이잖아. 특히 섬이라는 특성상 공중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다수의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며 대활약 중인 연예인을 직접 본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고 때문에 모든 행사 스케줄은 그를 중심으로 짜 맞춰져 있었어. 문제는 바로 다음 일정이 내 강연 시작시간도 그 때문에 늦춰지고 있었다는 거지. 하긴 불길한 예감은 사전 조율 과정에서부터 있었어. 워낙에 바쁜 그의 일정을 생각해 몇 번이나 시간 변경이 이루어졌었어. 최종적으로 내 강연이 끝나면 바로 그가 등장해 대미를 장식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 상태였는데 그가 행사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거야. 어쩔 수 없이 행사 시작 시간이 뒤로 밀리면서 원래대로라면 내가 차를 타고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앞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있게 된 거지.

뒷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 때문에 우웅 우웅 울부짖듯 떨리는데 내 마음도 그렇게 떨렸어. 아마 강연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업체 측 담당자도 그러했겠지. 부랴부랴 강연을 마치고 차를 타러 뛰어가는데 그 연예인이 모습을 드러내더군. 그 장면에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 청바지, 패딩 재킷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있더군. 지각은 그렇다 치더라도 명색이 연예인인데 저런 모습으로 와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마 늦잠 자다가 비행기도 놓치고 의상도 못 챙기고 그냥 내려왔나 봐. 아무튼 내 코가 석자인 관 계료 주차장을 향해 뛰는데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기억도 제대로 안 나. 동영상 플레이어로 4배속 재생한 것처럼 회사 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는데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담당자는 문 앞에서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원래 있어야 할 사람 중에서 1/3 이상이 빠져나간 강연장은 겨울비 때문만이 아닌 정서적 냉기로 가득 차 있었지. 1시간 강연이었는데 남은 시간은 15분 남짓밖에 없는 상황 더군다나 직장인 최고의 도락이라고 할 수 있는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샌드위치를 들고 오신 분들이라 고개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더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공항으로 가는 데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나더라고.

그 유명 연예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바쁜 사람이야. 전날 순천 강연을 마치고 평택으로 이동해 강연 후 바로 김포공항을 통해 제주도에 들어왔어. 집에서 좀 쉬다가 당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도 되지만 기상악화로 인한 연착 등을 생각해 전날 들어갔어. 밤 9시 넘어 호텔에 들어갔고 행사 당일에도 오전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어. 강사 입장에서 중고등학생 더욱이 수능을 끝낸 고3은 그야말로 끝판대장이잖아. 우리에 갇혀 있다가 뛰쳐나와 세렝게티 초원으로 귀환한 사자들처럼 날뛸 것이고 철저히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잡아 먹힐 수도 있으니까. 해당 학교가 제주도 중앙 쪽에 위치해 있고 겨울비도 내리고 있었기에 택시잡기도 수월하지 않을 것 같아 아침 일찍 제주공항으로 다시 돌아가 차를 렌트했어. 이렇게 한다면 해당 학교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다음 강연이 있는 모 기업체로 이동하는 것도 훨씬 수월할 것이기 때문. 겨우 수 킬로미터 거리이지만 최대한 시간을 아끼고 택시가 잡히지 않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것이었는데 제가 안일했었나 봐. '주인공의 지각'은 제가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토르 라그나로크의 마지막 전투씬처럼 토르가 짠 하고 나타나길 바랐는데 늦잠을 잤대나 뭐라나. 어휴.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내 강연에 대한 피드백은 대개 '아주 좋은 편'이야. 모 대학에서 1년 동안 사회 저명인사(!) 11분과 프로레슬러 1인을 초빙해서 기획했던 수업에서 나는 강연 평가 1위를 차지했는데 500명 수강생 100%가 내 이름을 써냈다며 담당자가 카톡으로 놀라움을 전했던 적도 있어. 기업 강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 그룹 인재개발원 담당자는 강연 후 평점에서 사상 최고점이 나왔다며 메일로 호들갑을 떤 적도 있지.


나는 '보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돈'으로 사는 사람이야. 길거리에서 우는 것보단 벤츠 타고 우는 것이 100배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직업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야. 아이러니하게도 '프로레슬링'만 경제적인 수단으로써는 가치가 없기에 일찍이 포기했어. 아마 내가 한 경기당 얼마를 받는지 안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껄? 나는 사랑과 우정이 이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우정이 없는 관계에선 '돈'이 최고의 가치일 수밖에 없지. 그래서 나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서 내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일단 강연료와 일정이 합의가 되면 그때부턴 지역이나 금액에 관계없이 최상의 퀄리티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해. 지방이라 시간 맞추기가 여의치 않으면 아예 전날 가서 모텔에서 잠을 자는데 숙박요금이 부담스럽지만 시간을 철저하게 지킨기 위해서야. 지난 수년간 단 한 번도 지각사태 따위는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내 인생사 최초로 강연에 지각하는 일이 벌어진 거야. 그러니 눈물이 났지. 그리고 강연을 여러 번 다니다 보면 강연자료를 USB 메모리에 담아서 몸만 가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일부러 항상 노트북을 들고 가는데 강연을 듣는 청중들의 연령, 지적 수준, 살고 있는 지역 등등이 모두 다른데 항상 똑같은 자료로 강연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아주 조금씩이나마 더 와 닿을 수 있는 내용들로 정리를 하는 거야. 이렇게 한 시간 전쯤 도착해서 강연 장소를 미리 확인하고 입장 동선을 생각하며 청중들을 즐겁게 해 줄 약간의 소도구도 준비하기도 하지.


나에게 '돈' 즉 물질적 보상이 자동차 엔진처럼 구동력을 전달한다면 '보람'은 핸들처럼 방향을 설정해주는 소중한 가치야. 엔진이 없다면 차는 굴러가지 않을 것이고 핸들이 없다면 본인은 물론 타인도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쇳덩어리로 변하겠지. 구동력과 방향을 같이 생각하는 삶. 어제 선생님이 보내주신 문자를 다시 읽으며 그런 삶을 다시 한번 다짐해 봤어. 역시 그 어느 하나라도 모자라거나 넘친다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겠구나 라고 말이지. 이 글을 읽는 친구는 어떤 직업을 생각하고 있어?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어? 당연히 엔진은 빵빵한 고배기량 고출력을 꿈꾸겠지? 그런데 핸들링도 한 번 생각해봐. 어떻게 해야 내가 타인을 이롭게 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 엔진만 고려하다 보면 너무나 쉽게 악당이 될 수 있는 세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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