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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Mar 17. 2021

저도 40대는 처음입니다만


<저도 40대는 처음입니다만> 


"저기 저 사람 보이지? 사시 패스해서 판사 하다가 정년퇴직한 사람이야"


2011년 뙤약볕이 마치 송곳처럼 피부를 찌르던 어느 여름. 서울 종로 모 공원에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는 곳에서 간부 한 명이 나에게 어느 노인을 가리키며 했던 말이다. 당시 모 방송국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서 어쩌다 보니 '진보'로 분류된 내가 극우집단 본진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 김대중/노무현 빨갱이, 북한 퍼주기, 종북단체 전교조 해체를 외치고 있었다. 과연 저 백발의 노인이 사법고시를 패스해 판사까지 했던 인물일까.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일까.



정보의 집적과 전달이 지금보다 더디고 산재되어있던 근대 이전까지 '지식'은 '무력'과 함께 최고의 권능이었다. 전제왕조를 거쳐 개인의 무력사용은 철저히 봉인된 상황 속에서 지식은 일생의 영달을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개인이 지식을 쌓는 자연스러운 방법은 일단 '오래 사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건기이고 우기인지 언제 어디에 작물의 씨를 뿌리고 수확해야 하는지, 이 버섯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등등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귀납적 정보의 축적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서 노인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했던 것이다. 


운전을 예로 들면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간단하게 최적경로를 찾을 수 있지만 제5 공화국 때만 하더라도 반경 100 km를 벗어나기 위해선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다. 만약 경기도 송탄에서 강릉까지 간다고 하면 게다가 강릉에서도 특정지역으로 가야 한다면 일은 더 복잡했다. 일단 운전자가 속한 동창회, 향우회, 상우회 같은 커뮤니티에 해당 지역 출신이 있는지 찾아서 길을 물어보고 만약 없다고 '강릉 횟집'처럼 지역명이 들어가 있는 상점에 찾아가 직접 주인장에게 문의를 했다. 그렇게 물어보면 약간 으쓱거리면서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것이 당시 모습이기도 했다.


 6년 전 어버이연합 회원까지 갈 것 까지도 없다. 헌법재판소에서 온갖 상식 이하의 발언을 쏟아낸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저 변호사가 과연 지금 고등학생보다 더 많은 정보량을 갖고 있을까. 아니 머릿속에 암기된 지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일 쏟아지는 각종 정보에 빠르게 대처하면서 검색하고 확인하고 다시 재 확산시킬 능력이 있을까.


아니 이건 어쩌면 정보, 지식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주 부산 출장을 다녀오면서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서울을 출발해 대구에서 팟캐스트 녹음을 하고 부산에서 비즈니스 미팅과 맛집 탐방을 하겠다는 원대한 그리고 급조된 일정으로 출발을 했다. 나는 대구에서 부산까지 파트너사 차량을 이용하여 같이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때 매우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난 내가 어딘가 이동할 때면 대중교통이 아닌 이상 자차 자력 운전을 기본으로 한다. 내 맘대로 동선을 정할 수도 있고 여차하면 일박을 덧붙여 사적인 여행으로 변환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이 운전하는 '업무용 차량'에 탑승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운전선과 보조석은 단순히 핸들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운전석에서 핸들을 붙잡았다는 것은 약 1톤이 넘는 이 강철로 만든 기계를 움직이는 최고 권력자로 본인을 비롯해 탑승한 사람들의 목숨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조석에 탄 이는 그것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부인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겠다고 남편이 보조석에 탔다가 대판 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이런 위계의 역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년이 된 자식과 노년에 이른 부모가 같이 여행을 갔다가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 항상 주도권을 쥐었던 부모들은 이제 아무것도 모르고 호기 있게 인터넷 사이트로 예매하고 계획을 세웠던 중년 자녀들은 이전과 달리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에 당황하고 짜증 낸다. 


 당시 부산행 자동차는 약 29세의 얼굴 윤곽이 뚜렷하고 웃을 때 입이 초승달 모양으로 벌어지는 젊은 청년이 핸들을 잡고 있었다. 예의 바르고 싹싹한 이였지만 난 내내 불편함이 있었다. 난 그 불편함의 기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대구시내를 한참 벗어나 중앙고속도를 꽤 달렸을 때 좁은 시트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주도권을 내준 것이다. 아니 빼앗긴 상태였던 것이다. 난 이 차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언제 가속해 추월할 것인지 차선 변경 또는 어느 휴게소에서 정차를 할 것인지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결정 권한은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음악을 틀고 볼륨을 조절하는 것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나에게 말을 건네지만 손가락 끝으로 살짝 핸들을 돌리는 것만으로 내가 탄 이 운명공동체가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도 모르게 갖추게 된다.


중년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운전석에서 핸들을 붙잡고 있다가 보조석으로 자리를 옮긴 것 또는 옮겨가려고 하는 것. 물론 개인이 하는 일에 따라 물려받은 재산이나 외모에 따라 수만 가지의 케이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중년이라는 것은 40대의 영역이라는 것은 활짝 핀 꽃이 아니라 서서히 시들어가는 중간단계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바싹 시들어버린 꽃은 그 나름대로 청결함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최종 종착지에 왔으므로 더 이상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없다. 간결하다. 하지만 시들고 있는 꽃은 생화가 갖고 있는 생물학적 요소의 파괴와 함께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까지 더해 보는 이들을 더 곤란하게 만든다.


내가 프로레슬링에 처음 입문했던 20대 후반-운동선수로서는 늦은 나이였지만-때만 하더라도 낙법 하다가 잘못해 정수리부터 수직낙하를 하더라도 뒷목에 파스를 붙이고 하루정도 휴식을 취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난 특히 어깨 관절을 자주 다쳤는데 훈련생 시절에는 길어봤자 일주일만 휴식을 취해도 복귀가 가능했지만 30대가 되자 석 달이 되었고 40대에 이르러서는 '3년간 훈련 금지'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의사로부터 받기도 했었다. 물론 하라는 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시간이라고 하는 제법 무거운 벽돌이 내 어깨 위로 켜켜이 쌓아 올려지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다리는 후덜 거리기 마련이다.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은 한계가 있다. 노화에 따른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서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다 보면, 오직 그것을 위해서 뇌를 풀가동하다 보면 도전, 창의 같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시도는 아예 포기함은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배가 남산만 한 임산부에게 저리 비키라며 지팡이로 툭툭 치는 못된 노인네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식이나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내적 성찰과 겸허에 대한 문제다.


중년은, 살짝 유통기한이 지난 요플레 같은 것이다. 농축 발효 요구르트의 특성상 유통기한을 며칠 넘긴다고 하더라도 몸에서 이상을 일으킬 확률은 낮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한이 지났다는 것엔 변함이 없고 심미적인 불안요소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30대가 20대의 연장이었다면 40대는 50대를 위한 준비로 보내야 한다. 이 시기를 잘못 보내면, 본격적인 노화의 초기단계를 잘못 보내면 광화문에서 세월호 가족들의 멱살을 잡거나 삼성동에서 공주마마를 외치는 노년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난 그래도 해보고 싶은 거 하면서 청춘의 영역을 보냈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도 벌고 때론 취업도 하고. 중고차 엑셀 80만 원에 사서 케니지 테이프 꽂고 달리던 시절. 하지만 지금은 20대 정규직 취업률 5.5%에 하루 자살자 37명, 3일에 한 명씩 남자에게 여자가 살해당하는 나라.  


경제통계를 작성한 이래로 처음으로 후배들에게 더 가난한 세상을 물려준 우리 세대.


사람이 대략 80살에서 90살 까지 산다고 하면, 40대는 가운데가 봉긋하게 솟아오른 부채꼴 모양의 아치형 다리 위 가운데 서있는 셈이다. 처음 다리 위를 걷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경사를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너무나 궁금하고 막연한 기대로 흥분돼 볼이 발갛게 상기됐었다. 하지만 중간지점 가장 높은 곳에 서 보니 이제 알겠다. 노안 때문에 약간 흐릿하긴 하지만 저 너머도 떠나온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더 나쁘다는 것을. 이제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하는데 원래 내려갈 때 관절에 더 무리가 가는 법.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히 성을 내며 오줌을 내갈기거나 다리 위에 돌덩이를 올려놓거나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힘들고 내가 실망했고 내가 짜증 나니까 뒤에 오는 사람은 더 힘들라고 말이다.


나도 40대는 처음입니다만.


40대 특히 중년 남자는 위생에 신경 쓰자. 무엇보다 '정서적 위생'이다. 사회생활도 20년 넘게 했겠다 이제 목 울대 세우면서 떠들 수 있는 나이다. 그게 먹히는 한국사회다. 하지만 그저 근육과 성량으로만 주변을 제압하다 보면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른다. 정서적 위생이 떨어지는 중년 남성은 앞으로 더더욱 사회에서 배척받게 될 것이다. 아마 어쩌면 광화문에서 삼성동에서 호기 있게 액션 활극을 찍었던 노년의 저분들은 이 시기를 끝으로 멸종되고 그 뒤를 이을 후손들은 아예 멸절될지도 모른다. 또 그게 맞다.

나도 40대는 처음입니다만 중년은 처음입니다만, 정서적 위생에 신경을 쓰자. 

그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며 아치형 다리 중간에 선 자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미덕일 것이다.


2017년 3월 17일 코로나 이전.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하던 KTX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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