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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Aug 22. 2022

다행과 불행 사이


엄마가 의식을 가졌지만,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누워 있던 그때, 

언어조차 잃어 말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자주 생각했다.


엄마에겐 엄마의 현실이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면에서 다행이었을까. 

평소 말했던 대로 끔찍한 불행일 뿐이었을까.

그저 아픈 순간의 불행과 덜 아픈 순간의 다행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기분이었을까.


사람은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에 대해 통제력을 가질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분명한 것은 본인의 모든 것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엄마는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엄마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쿡쿡거린다.

내내 고통스러운 시간 들이었겠지만, 그래도 부디 다행인 순간이 더 많았기를, 하고

바래본다.




그때, 나도 엄마를 보며 불행과 다행 사이의 어딘가를 매일 서성였다.

본인에게 결정권이 없어지면 미련 없이 보내달라고 했던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매일 엄마의 눈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불행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흘리던 그 많은 눈물들 속에는 늘 다행이 묻어있었다.

아직은 만질 수 있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내게 주던 그런 다행.


나는 그 시절 매일 다행과 불행 사이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2년.


나는 여전히도 다행과 불행이 교차하는 하루 안에 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 모든 다행과 불행이 이내 내 안에서 잠들어도

다행은 또 다른 다행으로, 불행은 또 다른 불행으로 내 삶을 드나들겠지.


불안은 다른 불안으로 대체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불안뿐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이, 모든 욕망이 다 그렇다.


이 모든 감정들을 안고도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그걸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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