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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Feb 25. 2022

숙제하는 마음으로

(with. JTBC 수목 드라마_<서른, 아홉 / 4부>


차미조(손예진) : 이왕 이렇게 된 거, 뒤돌아보지 말고 아쉬운 거, 못했던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놀자.


정찬영(전미도) : 너 미국 안 가냐?


장주희(김지현) : 그래, 너 안식년 안 해?


차미조(손예진) : 내 안식년 정찬영 돌보는데 쓸 거야. 그니까 뭐든 해. 너 하고 싶은 거 맘껏 다 해.

                       찬영아... 나 치료받자는 얘기 안 할 테니까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지구에서 역사상 제일 신나는 시한부가 되어줘.



JTBC 수목 드라마_<서른, 아홉 4부 중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 <서른, 아홉>은 30대의 끝자락에 선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서로 응원도 하고 비난도 하며 매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틈만 나면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하지만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하듯 어쩌면 마음은 여전히 18살 그때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는 세 친구, 많은 누군가들이 건너왔을 시절의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찬영은 췌장암 4기, 시한부다. 드라마는 그렇게 시작됐다. 찬영은 이미 죽었고 마흔 즈음의 과거와 스물 즈음의 더 먼 과거를 넘나들며 이어진다. 그런 이 드라마가 내게 거대한 슬픔으로 몰려왔다. 나와 긴 시절을 함께 건너온 친구와 죽음으로 이별해야 한다는 건 내게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17년 초, 응급실에서 나는 폐암 말기 의심 판정을 받았었다. 수술할 수 없는 폐암은 내가 시한부 환자가 된다는 걸 의미했다.  


드라마 속 차미조가 친구의 병을 알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습에 나는 내가 병실에서 친구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절망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말하지 못하는 그 마음,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머뭇거림 안에 담긴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대해 나는 너무 잘 알아서 아팠다. "아파,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그 어느 누가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결국 끝내 말하지 못했고, 친구들에게 내 가족의 전화로 그 사실을 알게 했다. 내내 나는 그게 미안했다. 


다행스럽게도(?) 폐암 말기 시한부 환자로 의심되던 나는 혈액암 2기 환자로 확정되었고, 긴 항암과 방사선의 시간을 지나, 지금도 여전히 내 친구들 곁에 살아 있다. 암환자가 아닌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절망적이기만 한 암환자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걸 몸 곳곳에 새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 사실을 안다는 건 친구들과 만나는 순간이 모두, 늘 소중하다는 걸 안다는 말과 같다. 안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모르는 짐작과 같은 그런 거 말고, 진짜 가슴 깊은 곳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 상황 말이다.  


.


내 병을 알게 된 친구들이 병원에 달려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친구들의 안타까운 눈동자를, 같이 울어주었던 그 눈물을, 말 대신 토닥여주던 손길을, 아닐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해주던 말들을... 나는 그것이 내가 살면서 되돌려주어야 할 마음이고, 나의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너무도 이기적이고, 쉽게 잊어버리는 동물이라 살면서 갚아야지,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는 안될 것이다. 수줍음 많고, 잘 모르고, 표현도 잘하지 못하는 나는 특히 더 그럴 것이다숙제라고 생각해야 가까스로 잊지 않고 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들 곁에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도 내 숙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숙제라는 게 늘 잘 해내고, 정답만 낼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하기 싫고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해야 하는 거라는 건 알고 사는 것. 나는 그렇게 믿고,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다. 숙제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말하는 많은 책들이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매일 그런 문장들을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인다. 삶이 이렇게도 고통스러운데, 죽음이 나쁜 일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원한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고, 내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친구를 보내야 하는, 그런 친구를 두고 떠나야 하는 지독한 슬픔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떤 드라마는 내 이야기여서 크게 공감하고 그때 재미는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겨우 드라마를 시작했을 뿐인데 어제 4부를 보면서는 너무 펑펑 울어서 힘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들과 똑같은 내 친구들이 생각나서 행복하기도 했다. 정해진 결말로 어쩔 수 없이 슬플 테지만, 인생은 과정에 있다는 그 흔한 말은 살아볼수록 진실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지든 나는 미조를, 찬영을, 주희를 세 사람의 우정과 사랑을 응원하고 슬픔도 기꺼이 함께 할 것이다. 


지구에서 역사상 제일 신나는 시한부, 그리고 그 옆의 친구들.

그 모든 이야기들은 내 이야기이고, 다름 아닌 내 친구들의 이야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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