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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Jul 29. 2019

나를 지켜봐 주겠습니까?

with. 드라마_<그들이 사는 세상>

지금도 기억한다. 장맛비가 천둥 번개를 몰고 와 가뜩이나 심약해진 나를 깨워 번쩍이는 방안을 서성이게 했던 2017년의 어느 여름밤을. 터지는 혈관 탓에 6차를 계획했던 항암을 5차로 끝내고, 매일 밤 12시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들락거리며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는 일 외에는 다른 걸 생각할 수 없던 그때, 그 밤. 어떤 힘에 이끌리듯 문득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날을. 


책상의 작은 빛에 의지해 언젠간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놓았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강렬하고 폭력적이지만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문체에 푹 빠져 아침이 오는 줄도 모르고 아침을 맞는 기이한 경험을 처음 했다. 모든 ‘첫’은 처음이라는 이유 하나로 누군가의 평생을 흔들 수도 있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그 밤, 그렇게 나를 흔들며 내 독서 인생의 첫사랑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이후 나의 독서란 스스로 생각해도 ‘미쳤나?’ 싶은 몰입의 경지였다.


-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쓰지 않았을까? 왜 읽지 않았을까?


이십 대와 삼십 대의 내 인생 모두는 아마도 책 대신에 작가 ‘노희경’의 드라마 안에 있었을 것이다. 수백 권의 책 보다 많은 인생을 드라마 안에서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배움이란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운과 능력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늘 감동을 주었지만, 내가 드라마 속 인물이 되기에는 아직 내 삶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다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늘 쓰고 싶었지만, 또 절실한 마음으로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비극이 판치는 세상, 어차피 아플 대로 아픈 인생, 구질스런 청춘…… 그게 삶의 본질인 줄은 이미 다 아는데 드라마에서 그걸 왜 굳이 표현하겠느냐, 희망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말할 가치가 없다. 드라마를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말하는 모든 비극이 희망을 꿈꾸는 역설인 줄을 알아야 한다.”


- 노희경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中 -


이제 나는 쓴다는 행위 자체가 결국 희망을 말하는 거라는 걸 안다. 아니,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희망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짧은 시간에 아버지를 잃고, 내 존재가 소멸할 위기를 겪고, 이제 엄마를 잃을 위기마저 겪고 있다. 하나 있는 형제는 그저 자신의 몫을 챙기기에 바쁘다. 경제적 위기감을 유예시키고 정신적 독립을 위해 40년을 살던 동네를 떠날 준비를 한다. 잘 굴러가는 것만 같던 인생의 톱니가 사실은 끝까지 가족과 화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침묵으로, 무심하게 방관하기만 했던 나의 눈빛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고통받아야 했던 엄마의 한숨으로 천천히 삭아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혹시 견딜 수 없이 이어지는 지금의 아픔이 글쓰기에 있어서 면허증 같은 것이라면, 오늘 나는 이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제 구실을 못하게 되어버린 톱니에 새로운 홈을 내고 서로가 딱 들어맞아 다시 힘차게 굴러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고장 난 상태 그대로라도 이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절규이자 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나를 먼저 이해하고 싶다는 의지일 뿐이다. 과거를 기억해 내고, 사라진 대상과 화해하며, 남아 있는 시간에 충실하도록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읽는 일을 멈추고 보는 시대로 상태의 전환을 이루고 있는데, 나는 반대로 보던 것들을 멈추고 매일을 읽기와 쓰기에 몰두한다. 그런 내 모습에 가끔 늦었을까, 고민도 한다. 하지만 <죽음의 수용소>를 쓴 빅터 프랭클은 매 순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은 삶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 글을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그저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대답만을 해왔던 질문에 이제는 “예”라는 늦은 대답을 조심스레 내놓아 본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하더라고. 이제라도 무엇이라도 한 번 써보겠노라고.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당신들을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바로 그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그런 나를 지켜봐 주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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