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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Apr 11. 2022

일몰

with. 이성복 시론_<무한화서>

20220402 을왕리 일몰


마 기일에 친구와 엄마에게 갔다가, 을왕리 바닷가 일몰을 보고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 조용하고 아름답게 지는 일몰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저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사람이 자연처럼 아름답기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저무는 순간엔 어쩔 수 없이 육체의 고통이 함께 할 것이고 정신의 맑음도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걸 나는 엄마의 마지막을 통해 배웠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동안에라도 저 일몰처럼 조용하고 잔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말처럼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또 내 인생이 왜 이러나 하는 날들이 무수히 펼쳐지겠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날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듯 뚜벅뚜벅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20220408 강화도 일몰


을왕리의 일몰을 보고 돌아와 일주일 후 지인들과 강화도 일몰을 마주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있을까 싶게 아름다웠던 일몰을 보면서 일주일 전 일몰을 보며 했던 생각들을 다시 했다. 일몰이 잔잔하고 조용한 것만은 아니겠구나, 이렇게 가슴 벅차고 설렐 수도 있구나. 어쩌면 일출만이 그런 웅장함과 희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나의 편협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용한 것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고 너무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는 늘 이상하게도 슬픔이 스며든다. 그건 아마도 내 인생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 사람 얘기 아닌 게 없어요. 보고 듣고 말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무언가를 볼 때는 항상 그것의 초라함과 속절없음을 보도록 하세요.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지요."


이성복 시론_<무한화서> (p.51) 


이날 선물 받은 이성복 시인의 책에는 시를 쓰는 건 멋진 비유를 엮어내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어떤 대상 자체가 삶이고 그 자체로 비유라는 말이 있었다. 현실 전체가 시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일주일 간격으로 일몰을 보고 돌아와 하는 생각은 이런 거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눈 안에 가득 담아온 일몰은, 알 수 없는 괜한 슬픔이 밀려들기도 했던 순간들은, 저물어 가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 과정은, 어떤 비유도 필요 없이 그 자체로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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