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우사랑 Feb 13. 2022

서운함이라는 단어

with. 최은영_<일 년>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2019 이상문학상 작품집 中, 최은영_<일 년> 





나에게 있어 서운함은 상대로부터 온 감정이기는 하지만 지극히 내 개인적인 영역의 감정임을 인정하는(인정하려고 하는) 단어였다. '너'를 탓하고 싶지만 마음 깊이 '나'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나를 밀고 들어올 때, 짐짓 여유로움을 잃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얼굴 구석구석 '괜찮다' '나는 서운한 게 아니다'를 시전 하게 되는 감정이랄까. 자꾸 미성숙한 인간임을 자각하게 되는 단어랄까,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원망과 같은 감정을 들킬세라 안절부절못하기도 하는.


타인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인간 본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어떤 감정을 완전히 '나'의 문제로 인식할 때, '너'의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혹은 잘 참아내고 있다는 어떤 우월감 같은 것이 나를 찾아들기도 했었다. 일종의 허세라고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위선에 가까울까? 


그러니까 '서운함'이라는 감정은 그저 나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감정일 뿐, 내가 상대를 탓하지 않으니 상대와 관련해서는 감정에 있어 깨끗하다는 생각 같은 것을 했던 것이다. 최은영의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문장을 알게 된 이후, 서운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을 자꾸 열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문장을 꺼내 읽어보고 또 읽어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알 것도 같았다. 상대의 반응이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서운한 감정이 생긴다는 그 인과관계는 자주 잊히고 서운함은 마치 상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내 멋대로 판단해버리는데서 오는 착각이라는 것. 착각을 진실이라 생각하며 나는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듯 참아내며 가지는 이상한 우월감. 그게 (혹시 감춰진다 하더라도) 폭력 아니면 뭐겠는가. 물리적인 충돌만이 폭력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내 감정에 폭력이 묻어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알 것도 같았다, 라는 부정확한 문장을 쓰는 이유는 아직도 완전히는 모르겠어서다.


'서운함'이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마음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어떤 단어나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라도 생각한다. 내 마음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면 딱 그만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소설책이나 드라마가 재미있고 감동적인 건 끝내 볼 수 없는 상대의 사정을 보여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 속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나의 억울함을 이해받고, 상대의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기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니까. 내게 찾아오는 서운함이라는 단어 뒤에는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상대의 어떤 사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안다.


물론 생각은 매일 변하는 날씨처럼 변화무쌍하다. 오늘은 알았다가 내일은 또 모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매번 생각할 때마다 변하지 않는 생각은 하나 있다. 어쨌든 서운하다는 건,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 내 안의 욕심을 걷어내면 삶이 조금은 편해진다는 것. 타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 바라는 대로 살아지지 않으면 그냥 그러려니 감정을 스쳐 지나가는 것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일에는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모든 순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