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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사랑 Aug 19. 2022

오늘도 달리는 이유

with. 정윤정_<미생>


운동을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내 인생에서 운동이란 걸 꾸준히 해 본 역사가 없으니, 인생을 통틀어 내 운동의 역사란 이제 겨우 2년을 조금 넘어섰을 뿐인 거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2년 만에 나는 런닝머신 위에서 5km를 쉬지 않고 30분 근처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정말 문장 그대로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런데 2년이 걸렸다, 라는 한 문장 안에는 달리고 달린 무수한 날들이 존재한다. 


어떤 대단한 목표가 있다거나, 생각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지 겨우 두 달이 되었을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큰 병을 앓고 난 몸이 채 회복하지 못한 채 일상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런 상태였다는 건 그때는 몰랐다. 그저 슬픔에 갇힌 시간들을 천천히 건너고 있었을 뿐이다.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든 어쨌든 나는 운명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헬스장에 발을 들여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운동 초보들이 헬스장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그랬다. 어떤 대단한 목표나,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운동도 아닌데 헬스장에 가면 PT 수업 시간 이외의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근력운동은 아무것도 몰라서 그저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조금 연습해 보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면 수업 시간에 배운 스트레칭을 좀 해볼까? 생각했지만, 운동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운동 초보자에겐 스트레칭의 중요성이 몸에 와닿지도 않지만, 스트레칭마저도 내 관절의 움직임을 몰라서 못하고, 하려고 해도 안돼서 못하고, 모르고 못하니까 금방 끝나 버린다.


그때, 내가 선택한 게 유산소였다. 살도 빼고 좋잖아~. 그렇게 별 생각도 없이 런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PT 수업을 받고, 수업을 받는 날을 포함해 일주일에 6번 런닝머신 위에서 걸었다. 일요일엔 헬스장이 열지 않아서 나도 쉬었다. 일주일에 6번을 걸었다고 하면 뭐 대단히 많이 걸은 것 같지만 운동의 시작 자체가 비루했던 것처럼 역시 목적 없이 흐느적거리는 걷기를 시작한 것이다. 다행인 건 나에게는 시간이 있었고, 약간의 성실함도 있었다. 


무조건 6km를 걸어보자, 걷다 보니 막연하지만 마음이 먹어졌다. 그런데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너무 많이, 심각하게 몸이 좋지 않았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업을 받고 6km를 걷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오전에 운동을 하면 하루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목할 점은 6km를 걷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사람, 그게 나였다. 


내가 아는 작가님은 본인은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아서 생각한 대로 작품을 완성하려면 남들보다 미리 쓰고 매일 써야 한다면서 하루 5분이라도 글을 매일 쓴다고 했다. 나의 걷기도 그랬다. 남들은 이미 튼튼한 몸과 다리로 저 앞을 달리고 있으니 나는 그저 매일 걷고 또 걸어야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 타인을 꼭 따라잡을 필요는 없겠지만, 나름의 목표점을 정해두면 덜 지칠 것 같았다. 그런데 걷기를 시작하자,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머릿속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알 수 없는 욕심이 몸 어딘가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걷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달리고 싶었다. 런닝 머신에서 신나게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따라 나도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욕심은 언제 화를 부르는 법. 체중을 이기지 못하는 발목, 약의 부작용으로 좋지 못한 고관절, 원래도 가끔씩 아프곤 했던 허리, 살면서 별로 아플 일 없던 발가락까지 내가 달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이곳저곳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겐 시간과 성실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그 모든 아픔들을 무시하고 달려서 더 크게 탈이 나 고생을 한 적이 있고, 그런데도 무작정 아픔을 이기고 달리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기어코 달리는 무식함도 내 안에는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조금 더 달리고 싶은 욕망을 매일 걷고 뛰면서 키워갔다. 그리고 나이 오십을 코 앞에 두고 기어코 5km를 쉬지 않고 달리고도 몸 아픈 데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런 결과가 기본 체력을 가진 누군가에는 몇 개월 만에도 달성 가능하고, 또 심지어는 단 몇 주만에도 가능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기록이 나 스스로에게 감격스러운 것은 어쩌면 이렇게 남들보다 한참을 뒤처져 있던 시작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6km를 한 시간을 훌쩍 넘게 걸어서 완주할 수 있었던 처음의 '나'라는 그 시작점과,  5km를 30분 근처로 쉬지 않고 달려 완주할 수 있는 지금의 '나'라는 이 결말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나'의 모습들이 떠올라 감격스러운 것이리라.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나는 런닝머신에 올라 선 처음부터 달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혼자서 매일 열심히 달릴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물론 나의 달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매일 이어지고 있다. 매일 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길고 짧게 매일 달리는 것은 맞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좋아진 것은 눈에 보이는 기록뿐만은 아니다. 정작 진짜 좋아진 것은 마음이다.


체력이 충분할 때는 모든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진다. 사는 일이 조금 쉬워진다. 간단하게는 청소나 식사와 같은 작은 일을 챙기는 것부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정신적인 것까지 어떤 일이든 쉽게 시도해 보는 사람이 된다. 나는 늘 무기력함이 기본인 사람이었는데, 의욕이라는 것이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운동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내게 하루를 살 에너지가 없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어떻게 관대해질 수 있었겠는가.


내내 힘겨운 삶을 정신력으로 버텨보겠다고 기를 쓰며 살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달리기 기록을 줄이면서 하나씩 알게 됐다. 삶의 많은 힘겨운 부분들은 나의 모자란 체력이 문제였다.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아니 정신력보다 몸이 먼저다. 건강한 몸이 정신을 끌고 간다. 약해진 정신은 건강한 몸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아픈 몸은 정신력만으로는 끌고 갈 수 없다. 이것이 오늘도 내가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온 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달리는 이유일 것이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미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니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 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윤정 극본_<미생>


체력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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