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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Dec 02. 2023

책과 고양이가 있는 남의 집

복이 엄마의 북스테이를 응원하는 글

복이 엄마는 내가 집에 올 때면 귀여운 트레이에 웰컴 기프트를 올려둔다. 이번 방문 웰컴 키트는 밀카 초콜릿 하나, 트와이닝 홍차 하나, 수면 온열 안대 세 개. 그리고 립 마스크다. 덕분에 지난밤 눈을 따뜻하게 하고 잘 잔 나는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복이 엄마는 집에 없다. 복이와 집에 대한 주의 사항만 엽서로 남긴 채, 도쿄로 떠났다. 나는 복이를 봐주러 이 집에 와있다. 주인 없는 남의 집에서 주말을 보낸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복이 엄마네에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본의 아니게 한 번 오면 꽤 긴 시간을 머무른지라 이제는 짐 푸는 것도 익숙하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약간 알러지가 있기는 해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운 좋게도 복이 엄마 집에는 둘 다 있다. 1층에서 서점을 하던 복이 엄마가 엄선해서 가지고 올라온 책들을 골라 읽는 게 재미있다. 복이는 내가 본 집고양이 중 가장 낯을 가리는 고양이인데, 그래도 새벽이 되어 배가 고프면 꼭 머리맡에 와서 운다. 아니면 내 얼굴을 밟거나. 복이 엄마네 집에서 나는 아기 같은 복이의 밥을 챙기고 놀이를 거들고 화장실을 치우는 틈틈 책을 읽는다. 복이 엄마네 집은 고양이를 키우는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내는 집이다. 그래서 이 집에서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밥 먹고 눕기만 좋아하는 날 일으켜 앉히는 힘이 있는 집이다.


재작년에는 3주 동안 복이 엄마네 집에 머무르며 인생 첫 책의 초고를 썼다. 복이 엄마네에 온 둘째 날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복이의 건강을 걱정하며 전화를 걸자 오히려 복이 엄마는 좋아했다.

 "그럼 하루종일 복이랑 있을 수 있겠네!"

새벽에는 복이 밥을 주고 낮에는 앓다가 저녁이 되면 복이와 놀고 밤에 초고를 썼다. 코로나를 생각하면 정말 아프고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복이 엄마 집에서 보낸 3주를 생각하면 코로나 기억이 쏙 빠진다. 밥을 달라고 다리에 꼬리를 감는 복이. 비닐 포장된 만화책. 밤에 타이핑을 하면서 차가워지던 손끝. 컨디션 때문에 원고는 일주일 늦었지만, 어딘가 평행 우주에서 작가가 된 (그리고 고양이 알러지 없는)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과 고양이가 내가 글을 쓰게 만드는 필요조건이라는 걸, 복이 엄마 집에서 글을 쓰면서 느꼈다.


1년도 더 지나 다시 겨울에 복이 엄마 집에 왔다. 복이는 전보다 더 커(뚱뚱해) 져 있고 코 밑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흰 점이 생겼다. 복이 엄마의 책은 어느새 책장과 그 위를 꽉꽉 채워 흘러넘쳐있다. 나는 조금 낯설어진 복이 엄마 집을 구경하다가, 다시 복이와 놀고 책을 읽고 밤이 되어 글을 쓴다. 작년과 비교해 나는 조금 더 나이 들고 조금 더 바쁘고 조금 더 글과 먼 사람이 되었지만, 이곳은 복이 엄마 집.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집이다.


책이 있는 고즈넉한 스테이를 차리는 게 복이 엄마의 꿈이랬다. 지금도 귀여운 웰컴키트와 쪽지로 방문자를 반기는 이 집이 스테이가 되면 얼마나 더 상냥해질지 궁금하다. 아마 복이 엄마의 스테이는 글 쓰는 사람들의 장기 작업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낯가리는 복이가 사람 많은 공간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쯤엔 나랑은 더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간 글 쓰는 내 옆에 복이가 궁둥이를 붙이고 가르랑거려 주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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