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는 비누
나는 폼클렌징과 바디워시 대신 비누를 쓴다. 여기저기서 받은 세안 비누가 쌓여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피부에 잘 맞기도 하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점이 좋아 꾸준히 쓰고 있다. 덕분에 몇 년 동안 물이 고여 곰팡이만 슬던 비누받침이 드디어 역할을 찾았다. 각져있던 비누가 점점 녹아 작아지며 무르기 시작하면 다음엔 어떤 비누를 쓸까 미리 골라두곤 한다.
3년 간 비누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비누의 장점은 두 개다. 첫 번째 장점은 바로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다. 폼클렌징이나 바디워시는 한 번 쓰면 몇 개월씩 계속 써야 했는데, 비누는 워낙 작은 데다가 얼굴과 몸 전체에 사용해서 한 달 주기로 바꾸게 된다. 나 말고도 같이 사는 친구가 함께 쓰니까 혼자 사용하면 한 달 이상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이 정도 기간이 딱이다. 괜찮은 향기에 코가 무뎌질 즈음, 새로운 향기로 바꿀 수 있어서 좋다. 새로운 비누를 쓰면 씻는 게 즐겁다. 씻는 걸 귀찮아하는 나한테는 좋은 동기부여다.
두 번째 장점은 남은 양이 눈에 바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큰 장점이다. 대부분의 폼클렌징과 샴푸, 바디워시는 액체형이라 플라스틱 통에 담겨 그 남은 양을 가늠하기 어렵다. 가벼워지는 듯 아닌 듯 애매한 무게를 가늠하다가는 통 속에 남은 거품기를 몇 번이고 희석해서 몸을 씻게 되고 만다.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세면대와, 그 위에 놓인 비누 받침. 비누 받침 위에 불어서 늘어진 비누의 흔적이 보이면 차가운 욕실 슬리퍼에 발을 넣기 전에 호다닥 새 비누를 꺼내올 수 있다.
짧은 주기와 정직함은 비누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괜찮아요! 만 외치다가 몸도 마음도 방전되어서 껍데기만 지하철에 실려 한강을 넘나들던 나랑은 정 반대란 말이지. 길게 버티다 무뎌지는 게 좋은 건 절대 아닌데, 어쩌다 나는 견디는 사람이 되었을까? 거의 다 써서 납작해진 비누를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니 새해는 새해인가 보다.
작고 소중한 향기 덩어리가 올해도 우리 집 화장실을 향기롭게 해주는 동안, 크고 찌든 커다란 사람 덩어리는 좀 더 괜찮은 상태가 되면 좋겠다. 거품기에 물 타서 맹맹하게 오래가듯 말고, 적당히 흐물흐물해지면 새 비누에 찰싹 붙어 잘 섞여 녹아가듯이. 끝까지 버리는 것 없이 쓸 수 있다는 것도 비누의 장점이다.
그 자체로 알맹이인 사람이 되기로 다짐하는 스물아홉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