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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야외 화장실, 수세식보다 낫다!

(자칭) 도시인의 몽골 탐방 시행착오

by 파은

여행을 시작한 지 이틀째. 우리는 여러 여행자들이 그러하듯, 몽골의 아날로그함에 취해 있었다. 몽골의 것이라면, 아무리 낯설어도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것이 아무리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더라도.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에게 자잘한 시행착오를 남겼다.




몽골 마을에서는 종종 정전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가 첫날 장 보러 들른 작은 슈퍼에서도 정전이 일어나 수기 계산을 했는데, 둘째 날 장 보러 간 커다란 할인 마트에서도 정전이 일어났다. 할인 마트는 어림잡아 슈퍼의 네 배 정도 규모라 손님도 많았는데, 손님도 점원도 이런 일에 익숙한 것 같았다.


카트에 과자와 술, 라면 같은 간식을 담고 차례를 기다리던 우리는 계산대 옆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기로 했다. 읽지 못하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포장지 사진만으로 유추해 가며 꺼내 먹었는데, 이상한 얼음컵이 있었다. 정말 종이컵에 갈린 얼음이 꽉꽉 들어간, 말 그대로 얼음컵이었다.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파는 것처럼 음료를 넣어 먹는 용도도 아닌 것 같았고, 얼음이 누런 색인 걸 보아 순수한 얼음도 아닌 것 같았다. 다시 보니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에는 그런 얼음컵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우리는 짧은 토론을 했다. 이게 먹는 건지, 아닌지. 한국이었으면 이런 고민이 바보 같았겠지만, 우리가 있는 곳은 몽골이었다.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스크림도 눅눅한 와플 콘에 흰 우유 아이스크림이 담겨 비닐 포장 없이 그대로 냉장고에 들어가 있다. 과자에 스티커를 붙여 바로 파는 거다. 입에 들어가는 부분도 포장 없이 노출되어 팔리는데, 눅눅해진 종이컵은 양반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먹어도 된다와 먹는 게 아니다, 그리고 먹었다간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갈 거다로 나뉘어 논쟁했다.


이 논쟁을 끝낸 건 우기였다. 우기는 그 얼음컵을 먹어보겠다고 선언했다. 어느 누구도 우기를 말리거나, 공금을 그런 데 쓰지 말라고 첨언하지 않았다. 말은 안 했지만, 다들 그 맛과 소감이 궁금했던 거다. 우리는 사뭇 비장한 모습으로 계산대에 보드카와 과자, 라면, 그리고 얼음컵을 올려놓았다. 하나 둘 우리의 간식들이 결제되고 얼음컵은 마지막 순서였다. 결과는… 계산 실패였다.


캐셔는 우리가 골라온 종이컵을 휘리릭 돌려보더니, 손을 휘휘 저으며 컵을 뒤로 뺐다. 생각해 보니 종이컵에는 바코드가 없었다. 신비가 캐셔에게 그 종이컵의 정체를 물었는데, 먹는 게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트를 나오며 생각해 보니, 그건 마트의 정전을 대비한 보냉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냉장고의 냉동식품들이 녹지 않도록 넣어둔 얼음이 아니었을까? 비록 얼음을 먹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몽골 사람들의 생활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얼음컵을 먹으면 화물칸에 실려갈 거라는 내 의견이 정답에 가까웠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사실 몽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날로그는 화장실일 거다. 몽골로 여행을 간다고 이야기하면 열에 여덟은 화장실에 대해 물어올 정도로 몽골 화장실은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는 들판에서 볼일을 볼 수도 있다는 말에, 나와 야호는 사방이 뻥 뚫린 초원에서 우산 몇 개를 가져가야 소중한 엉덩이를 가릴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우산은 동그랗고, 초원은 사방으로 뚫려 있으며, 몽골인의 시력은 4.0이라고들 하니까. 결국 짐 무게와 부피 때문에 우리는 우산을 딱 하나 들고 갔다. 다행히 몽골에서 그 우산을 우리의 우려대로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가 실제로 본 몽골의 노상 화장실은 사람이 한 명 정도 들어갈 크기의 작은 나무 부스였다. 나무 부스의 문은 너무 오래되어 달랑거리기도, 바깥사람과 눈이 마주칠 정도로 틈이 벌어지기도, 심지어는 아예 없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만족했다. 사방을 우산으로 가릴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삼면을 가려주다니, 감지덕지다.


우리 일행 중 노상 화장실 스타트를 끊은 건 야호였다. 바여라가 차를 세운 사이, 야호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말은 아날로그 도전이라고 해도, 약간의 겁이 있던 우리는 야호의 도전을 함께 응원했다. 야호는 몇 분간 화장실에 머무른 후, 우리에게 후기를 남겼다. 푸세식이라고 하기도 뭣한, 그저 깊은 구덩이와 발을 걸칠 나무판자 두 개가 있는 부스라고. 실제로 보니 그리 놀라운 모습은 아니었다. 야호와 내가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아래에서 냄새가 조금 올라오기는 했지만, 웬만큼 오물이 차면 흙을 덮어 묻고 다른 곳을 파 화장실을 옮긴다고 한다. 남들과 엉덩이가 닿는 부위를 공유하는 것도 아니고, 또 구덩이 깊이도 생각보다 깊어 웬만큼 지저분한 수세식 화장실보다 깨끗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하는 동안 화장실은 가끔 불편하거나 민망한 상황을 만들기는 했지만, 몽골 여행을 꺼리게 만들 만큼의 장벽은 아니었다. 화장실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기술이었으나, 정작 그것 없이도 우리는 잘 지냈다.




몽골은 분명 다른 서구권 국가에 비해 어려운 선택지의 나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공항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나잇대가 있는 한국인 일행을 종종 마주치곤 했다. 몽골의 인프라는 점점 한국의 것과 닮아가고 있으며 여행 난이도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좋은 일이다.


다만, 몽골의 아날로그함을 기대하고 오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 몽골 여행 경험이 있는 신비와 우기의 말에 따르면, 홉스골이나 고비처럼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는 여름 성수기에 게르 캠프 전체동이 한국인으로 가득 찬다고 했다. 게르팅이나 MT같은 합석 이야기를 들으면 웃기고 재미있는 한 편, 몽골만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물론 외국인 입장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라 몽골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말이겠지만.


몽골의 인프라가 조금 더 발전해서 마트가 정전되지 않는다면, 또 깔끔한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온다면 분명 몽골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일 거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몽골을 방문해 그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된다면, 우리는 몽골의 어르신들에 빙의한 것 마냥 옛날이야기를 하겠지. 나 때는 말이야… 몽골에 가려고 우산을 몇 개 가져가야 할지 토론도 했다고…. 편리함 뒤로 조금은 불편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몽골이나 한국이나 비슷했다. 한국에서도 몽골에서도 나는 아쉬워하는 쪽이다.



가이드 투메에게서 요즘 몽골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게르를 떠나 도시에서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보면 만약 나도 한국의 문화와 서울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시골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며 서울로 갈 날을 기다리던 때가 생각이 났다. 가로수 간격보다 가로등 간격이 넓었던 그곳은 몽골과 닮아서, 나는 몽골의 아날로그함에 금세 정을 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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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다녀온 며칠 뒤, 야호와 함께 사는 우리 집의 변기가 막혔다. 사람을 부르기 전까지 우리는 용변을 가까운 지하철과 회사 등에서 해결해야 했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광활한 몽골과 그 초원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던 간이 나무 화장실이 더더욱 그리웠다. 가끔은 현대 문물보다 아날로그가 더 좋을 때가 있는 거다. 우리는 화장실을 묻어버리고 마당에 큰 구덩이를 파고 싶은 욕구를 억눌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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