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우 아래 캠프파이어
시작하기 전에.
글 발행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다양한 주변 일들로 인해 잠시 글 발행을 멈추고 있었는데,
꾸준히 제 글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보니 부끄러워집니다.
어쩌면 7-8월이 몽골 여행 성수기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무튼,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남아있는 몽골 이야기 열심히 적어보겠습니다. :)
이번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별똥별이 떨어지면 왜 소원을 빌어야 할까?
돼지나 똥 꿈을 꾸면 복권을 사러 나가는 것처럼, 문지방을 밟으면 뱀이 나온다는 것처럼 학습된 미신이라기에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익숙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별똥별이 떨어지면 왜 소원을 빌어야 할까? 나는 그게 희소성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깡시골 내 고향 별총총 밤하늘에서도 나는 별똥별을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회색 대기 화면처럼 훤한 서울 밤하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별은 많아봤자 대여섯 개. 그중에서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보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엄청 희귀한 광경일 거다. 그러니까 그 운에 내 소원을 묻혀보고 싶은 건 당연한 욕심이 아닐까 싶었다.
뭐, 더 낭만적인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떠올려 빌 수 있을 만큼 간절한 소원이라면 어떻게든 이루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내게는 그리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간절하게 소원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밤하늘을 올려다볼 짬이 있을 리 있을까. 나같이 들숨에 복권 날숨에 건강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데 몽골에서는 별똥별을 보기가 쉽다고 한다. 애초에 눈에 보이는 별이 많으니 별똥별도 더 잘 보이는 건 당연지사겠지만, 그렇다면 소원은? 몽골에서 비는 소원은 더 많이 이루어지는 걸까? 몽골 사람들은 소원도 별똥별 떨어지듯 팡팡 비는 걸까? 아니면 몽골에는 그런 미신이 없을까? 우리는 왜 별똥별에 소원을 빌어야 할까?
*
비 오는 저녁, 컨테이너에서 문득 유성우 생각이 났다. 늘 이맘때에는 유성우 기사가 보였던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았다. 잘 터지지 않는 몽골 유심과 씨름한 끝에 우리는 페르세우스 유성우 기사를 찾았다. 한국에서 유성우가 가장 잘 보이는 날은… 어제였다. 우리가 쏟아지는 빗방울과 날벌레를 피해 물 2리터가 담긴 냄비를 들고 피난 같은 귀가를 하던 밤, 한국에서는 유성우가 쏟아졌다고 했다. 물론 하루 이틀이란 개념은 작디작은 지구의 것인지라 유성우가 24시간이 끝났다고 땡! 마무리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오늘도 어쩌면 평소보다 많은 별똥별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깥에서는 야속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속상하지는 않았다. 첫날 이미 무서울 정도로 많은 별을 보기도 했고, 동행들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난롯불이 만드는 온기 밖으로는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하지만 비는 어느새 잦아들었고 우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캠프파이어를 포기하고 침낭을 택하기엔 아까운 날이었다.
비가 그친 한밤의 초원, 아파트만큼 높은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벌판 한가운데에서 나무들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캠프파이어를 위한 장작은 우리 중 가장 키가 큰 투메보다도 높게 쌓여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피어난 불은 원뿔 모양으로 불을 감싼 장작을 타고 아주 높게 타올랐다. 쌀쌀한 몽골의 밤에 습기까지 올라 아주 쌀쌀했는데, 그 추위를 잊게 할 정도로 불은 강한 열기를 뿜어냈다. 바여라는 우리에게 한 잔씩 보드카를 따라주며 몸을 덥히라고 말했다. 홀짝홀짝 보드카를 마시는 동안 불 가장 안쪽에서는 은박지에 감싼 감자가 익어가고 있었다. 불씨 튀는 소리에 매캐한 연기 냄새, 불을 등지면 콧속을 쨍하니 울리는 찬 공기, 그리고 샛노랗고 달달한 감자!
그야말로 낭만이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었다. 별을 보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조명이라곤 캠프 내부를 밝히는 핀라이트와 캠프파이어뿐이었다. 달은 떠 있었지만, 우리 뒤의 높은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달이 가려지자 하늘에 보이는 건 오로지 별뿐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등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이어 한 명씩 외치기 시작했다.
“별똥별!”
점으로 이루어진 하늘에 죽 그어지는 선. 고양이 발톱에 긁힌 자리에 사악 올라오는 핏방울처럼, 별똥별은 긴 궤적을 그렸다. 굳이 밤하늘을 이리저리 샅샅이 훑지 않아도 별똥별은 반짝, 존재감을 과시했다. 우리는 별똥별을 발견할 때마다 환호했다. 별똥별이다! 또 떨어진다! 처음에는 몇 개의 별똥별을 봤는지 숫자를 세다가, 나중에는 그 길이와 반짝임을 비교하기도 했다. 아까 본 것보다 더 길었던 것 같은데, 밤하늘 중앙을 좍 그었네, 하면서.
우리가 별똥별을 찾는 사이, 투메보다 높이 타오르던 캠프파이어는 어느새 내 명치 정도로 사그라들어 있었다. 슬슬 투메와 바여라가 철수할 기미가 보였다. 두 사람은 불을 우리에게 맡기고는 숙소로 사라졌다. 불 꺼져서 추우면 잔가지 모아서 불 피워도 된다. 자러 갈 때 불씨가 남았는지만 잘 확인하고 끄면 된다. 투메는 천하태평이었다. 혹시 우리가 불을 잘못 관리해서 이 초원과 나무들이 다 타버리면 어떡해요?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투메는 고개를 저었다. 풀밭에도 나무에도 이슬이 맺혀 불은 나지 않는다. 만약 불씨가 남아 있어도 새벽이슬에 다 젖어 버릴 거다. 투메와 바여라가 떠나자 신비와 야호도 슬슬 일어날 채비를 했다. 내일 여행을 위해선 자야 할 것 같아. 맞는 말이지만 아쉬웠다. 오지 않은 내일보다 기쁜 오늘을 소중히 하는 게 내 성격이라서. 잠이야 차에서 자면 되지 않을까 싶어 늦장을 부렸는데 손이와 우기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불이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 별을 보기로 했다. 우기는 불을 지키고, 나와 손이는 신비와 야호를 컨테이너 숙소까지 바래다줬다. 나올 때에는 내 돗자리와 손이의 담요를 들고 왔다. 본격적으로 별을 보기 위해서.
비로 젖어있기는 했지만, 뒤쪽 나무 아래에는 제법 괜찮은 가지들이 많았다. 불이 너무 커질까 봐 쓰지 않았던 큰 통장작들도 몇 개 남아있어 우기가 불씨 위에 새 장작을 쌓았다. 중간에 손이가 굴려온 통나무가 장작일지 캠프에서 쓰는 의자일지 잠시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작은 캠프파이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발을 불가에 두고, 우리는 나란히 붙어 하늘을 향해 누웠다. 밤하늘에는 별, 땅에는 물기 어린 풀과 불, 그 사이에는 우리가 있었다.
그날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글을 미뤄두다 보니 어느새 여행이 끝나고 1년이 지나버리기도 했고, 또 시시콜콜한 내용들이었다 보니 휘발되기도 했고. 몇 가지 뾰족하게 떠오르는 내용은 있지만, 그건 그날 밤에 묻어두기로 한 나와 손이, 우기의 것이니 여기에는 적지 않기로 했다. 몽골의 이야기는 몽골에, 그 밤의 이야기는 그 밤에 남겨두기로 했다. 아무튼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사회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 그 깊은 이야기는 우리가 남이었기 때문에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별똥별이 떨어지면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처음에는 별똥별을 발견한 기쁨으로 치는 박수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에게 직접 치는 박수처럼 느껴졌다. 별똥별은 좋은 징조니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좋은 징조니까 우리는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서로를 격려했다. 나의 회사 고민에 떨어진 별똥별은 고민을 없애주는 별똥별. 손이의 취업 고민에 떨어진 별똥별은 취업 대박을 위한 별똥별. 우기의 인간관계 고민에 떨어진 별똥별은 행복을 위한 별똥별. 서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우리가 서로의 내밀한 고백에 대해 대책 없이 위로를 건네고 다독일 때, 별똥별은 정말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별똥별이 떨어졌다!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비록 우리가 유성우 아래에서 나눈 건 소원이 아니었지만, 먼 타국의 어느 밤 낯선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만큼의 고민이라면 위로가 필요했을 거다. 비록 그 고민에 구체적이고 확실하며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을지라도, 별똥별 아래서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빌었다. 별똥별이 가진 힘을 가슴 깊이 믿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듯 서로의 안녕과 여행의 안전을 빌었다. 우리의 소원을 이뤄줄 것처럼, 별똥별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반짝거렸다. 별똥별의 역할은 그걸로 충분했다.
어느새 불이 다 사그라들어 밤하늘은 더 깊어졌다. 이제는 내일을 맞이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재에 물을 부어 불씨를 없애고 돗자리를 털어 접었다. 반바지를 입은 우기의 다리에는 불똥이 튀어 탄 자국이 생겼다.
“아, 한국 가면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
캠프의 샤워실은 남녀 한 칸 씩이었는데 여자칸이 고장 나 우리 일행 일곱 명이 남자 샤워칸 하나를 돌아가며 써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샤워 순서를 정하고 씻으러 나갈 준비를 하는데 소은이가 나를 불렀다.
“언니, 나 신발 좀 봐.”
어제 다리가 다 그슬린 우기를 함께 놀렸는데, 소은이의 흰 운동화에도 검댕이 한가득이었다. 큭큭 웃으면서 내 신발을 보여줬는데, 정작 나는 신발 대신 바지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다리에 불똥이 튀어 바지에 구멍이 두 개나 났는데도 신나서 별똥별을 봤구나, 조금 웃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