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기의 다채로운 뭣같음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식사를 거절당했다. 사유는 브레이크 타임. 브레이크 타임 제도는 한국에서도 몽골에서도 나를 배고픈 유목민으로 만든다. 식사는 할 수 없었지만, 투메는 이 집의 호쇼르를 꼭 보여주고 싶다며 우리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접시에 접시 넓이만한 호쇼르가 두 개나 쌓여 있었다. 밀가루로 감싸인 맥적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왜 브레이크 타임을 두어가며 장사를 하는지 알 만한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 꽤 지나 있던 상황이라서, 또 주변에 큰 마을이 없어서 점심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투메가 대안으로 찾아준 식당은 회전 원탁이 있는 가라오케식 룸식당이었는데, 감자를 으깨서 식사에 곁들여 주었다. 샛노란 몽골 감자는 촉촉하고 고소했다. 다른 음식은 기억에 크게 남지 않았는데, 그 으깬 감자가 유독 오래 떠오른다. 그 가라오케 룸식당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은 게 있다면 화장실이었다.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려는데 뒷마당에 있는 야외 화장실을 안내해 주셨다. 전에 야외 나무 화장실을 사용해본 경험자로서 자신만만하게 문을 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맡는 시골 밭두렁 두엄 냄새가 났다. 인적 드문 길가 옆에서 몇명 사용하지 않는 나무 화장실과, 마을의 큰 식당 손님들이 매일매일 방문하는 화장실의 차이는 인천 공항 내부 화장실과 밤 열한시 경의 홍대입구 화장실 만큼이나 컸다. 손이는 대응 방법을 안다면서 향기나는 휴지를 콧구멍에 꽂아주었다. 그 위에 마스크를 끼니까 좀 나았다. 여러모로 강렬한 점심이었다.
처음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과 지평선 때문에. 다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변 식생이 바뀌는 것 때문에. 그리고는 매일 보이는 새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차를 타고 달리면 몽골이 넓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매가 창공을 누비는 초원을 달려, 시끄러운 갈매기들이 사는 호수를 지난 뒤 우리가 도착한 세 번째 숙소는 하늘을 찌르는 침엽수림을 옆에 둔 오두막이었다. 두터운 가죽으로 두른 게르가 아닌 통나무 숙소. 동행 중 여자쪽이 수가 더 많아 우리는 넓은 컨테이너 숙소에 짐을 풀었다. 컨테이너 박스에 침대를 넣은 것만으로도 갑자기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문쪽에 굴뚝 달린 난로 덕분에 우리가 아직 몽골에 있다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오랜만에 보는 숲이었다. 몽골에 도착해서는 낮은 건물 높이만큼 자란 나무를 볼 일이 없었고, 서울에서는 가로수 외에 기억에 남는 나무가 없다. 앞뒤로 강과 산을 접한 강원도 시골에서 자란 나는 유독 숙소가 마음에 들었다. 게르 캠프 울타리를 넘어 트래킹하듯 숲을 걸었다. 나무에서 청량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숲 너머에는 평야가 있었는데, 여기도 비 때문엔 군데군데 땅이 갈라져 작은 개울이 생겨 있었다. 습한 모래가 낀 발을 씻으려고 신발을 신고 물에 들어갔는데, 물이 시렵다 못해 아렸다. 너무 좋았다! 따뜻한 것도 좋지만, 짜릿한 시원함이 필요한 때였다.
매일 저녁을 투메표 한식으로 먹었지만, 이날의 점심은 한식의 정수인 삼겹살이었다. 비건인 야호는 김치와 야채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후 해가 지면 숲쪽에서 캠프파이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캠프에도 우리 뿐이라서 그 큰 불을 우리끼리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캠프파이어가 가능하다면. 고기를 다 먹고 밥을 볶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여행 앞뒤로 따라 붙던 비가 드디어 우리를 따라 잡고야 말았다. 빗방울이 그리 굵지 않았고 구름 사이 조각조각 하늘이 보여서 괜찮을 줄 알았지만, 빗줄기는 장마처럼 굵어졌다. 얼른 식사 정리를 하고, 우리는 컨테이너 숙소에 들어왔다. 할 수 있는 건 누워서 이야기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나, 야호, 신비, 손이. 만난 지 3일 된 우리가 할 이야기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첫째 둘째날 여행 이야기를 하고 나니 자연히 말수가 줄었다. 지내던 환경도 워낙 달라서 대화가 쉽게 모이지 않았다. 회사, 비영리 단체, 해외, 군대. 정말 말 그대로, 여행이 아니면 모이기 어려운 구성이었다. 훈기가 남은 컨테이너. 불규칙한 빗소리. 점점 줄어드는 말수. 잠들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이미 컨테이너에 자리를 잡은, 하지만 그리 불편하지 않은 침묵을 계기로 우리는 낮잠을 잤다. (저녁을 먹고 잔 잠이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까 낮잠으로 치자.)
문득 눈을 떠보니, 손이가 깨어 있었다.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면서 노트에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당연히 뭘 하는 지 궁금했다. 정말 놀랍게도, 손이는 자소서를 쓰는 중이었다. 작년에 군대를 제대한 후, 손이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이틀 뒤에 입사 서류 지원 마감이라고. 뒷목 잡고 넘어갈 것 같은 계획성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손이의 희망 지원 회사는 내가 신입 사원때 다니던 곳과 비슷한 곳이었다. 손이와 나는 취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소설보다 소설같은 자기소개서. 검토는 하는 건지 의문인 포트폴리오. 직장인 급으로 스펙을 맞춰오는 무시무시한 고스펙 지원자. 대체 취업은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 나는 쉽게 대답해줄 수 없었다. 나도 어떻게 내가 지금까지 돈 받으면서 일하는지 의문이라서. 그렇게 취업과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해외 취업 성공자 신비가 잠에서 깼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신비의 해외 취업 경험으로 흘렀다. 교환학생으로 시작한 해외살이와 취업, 해외 회사에서의 에피소드들. 해외는 회사 생활 하기 괜찮냐고 물으니까 신비는 그냥 웃었다. 많은 말이 담긴 웃음이었다. 어딜 가도 회사는 뭣 같은가? 모든 회사는 별로인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인가? 비영리 단체에 다니는 야호는 그 의문에 해답을 주었다. 돈 주는 이들은 모두 돈 받는 이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회사는 증명과 경쟁의 장이 된다. 그리고 증명과 경쟁을 하기 위해 취준생들이 증명과 경쟁을. 취준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으려고 증명과 경쟁을…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였지만, 모두 돈벌기의 뭣같음에 공감했다. 우리의 꿈은 복권 당첨과 파이어족. 늙어 죽을 때까지 나오는 연금같은 미주였다.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을 주제로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던 옛날 예능이 떠올랐다. 결국 답은 돈이었다. 숙소에 갇힌 우리는 난로가 꺼진 줄도 모르고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했다. 바깥이 깜깜해질 때까지도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우기가 문을 두드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밤을 샜을지도 모른다.
“캠프파이어 한대.”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또 컨테이너가 너무 포근해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역만리 먼 몽골까지 여행을 왔지만, 걸즈톡에 시동이 걸린 이상 멈추기 아쉬웠다. 하지만 열린 문을 타고 들어온 바깥 공기가 코를 톡 쏘듯 시원했다. 따뜻하게 데워졌으면 시원하게 식히는 게 순서. 우리는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다. 구름이 걷혀 밤하늘이 선명했다. 저 멀리 숲 가까운 평지에 사람 키보다 높은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빛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