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르거 화산에는 꽃이 핀다
첫째 날 쳉헤르 온천 숙소에는 난로에 불을 켜주는 직원이 있었다. 덕분에 해가 뜨고 땅이 달궈지기 전까지 춥지 않게 잘 수 있었다. 들어온 줄도 모르게 불을 때고 가주시는 직원 덕분에 나는 난로에 불을 붙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 몰랐다.
게르 한가운데에 놓인 난로는 나무 장작을 태워 게르를 덥힌다. 두꺼운 나무 장작에는 불이 바로 붙지 않기 때문에 얇은 종이나 박스 골판지 같은 것에 먼저 불이 붙여 옮아가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불은 우리 마음처럼 쉽게 옮겨 붙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한 시점은 비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장작이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야호와 손이와 나는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참을 난로와 씨름해야 했다.
이 씨름을 끝낸 건 역시나 신비. 신비는 라이터를 받아 들고는 딱 한 번의 시도만에 불을 붙였다. 장작이 불을 골고루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게 신비의 비법이라고 했다. 신비는 정말 현지에서 가이드를 몇 년 한 사람처럼 익숙했다. 장작이 타닥이는 소리가 들리자 난로에서 온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의 명료한 뜨거움이 게르 전체를 데우고 연통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있는 게르에서는 연통 위로 연기가 퐁퐁 올라왔다. 아주 귀여운 밤이었다.
다만 한국인인 우리가 몰랐던 게 있다면, 불은 생각보다 뜨겁고 장작은 생각보다 빨리 탄다는 사실이었다. 한 품만 한 난로 가득 채워진 장작은 두세 시간 만에 다 탔다. 공기는 덥혀지는 것보다 식는 게 더 빨랐다. 우리는 난로가 식기 전에 빠르게 잠들고, 또 더 추워지기 전에 빠르게 일어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추위에 떨며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추위보다 짜증이 치밀었다. 갈매기 때문이었다. 내 고향이 강원도라 종종 해뜨기 전부터 닭 소리를 듣곤 했는데, 갈매기 울음소리는 그 이상이었다. 까악! 과 끼악! 의 중간쯤 되는 괴성을 내지르며 갈매기는 우리를 깨웠다. 닭이 아침을 여는 새라면, 갈매기는 새벽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오는 새였다. 우리는 서로가 깨어있다는 걸 인지한 그 순간부터 갈매기 욕을 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옆게르에서 나온 우기도 같은 욕을 했다. 알고 보니 우리 게르 캠프 한 구석에 갈매기들 무리가 앉아있었다. 우리는 갈매기를 향해 달리며 외쳤다. 좀 조용히 해!!
정작 투메와 바여라는 평화로워 보였다. 몽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생활인 걸까, 하고 생각했다.
3일 차 첫 일정은 허르거 화산 등반이었다. 원래는 2일 차 일정이었지만, 2일 차 하늘이 비가 쏟아질 듯 어두워서 3일 차로 옮겨온 일정이었다. 다만 하늘은 2일 차와 같아서, 우리는 비가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화산에 올랐다. 어제처럼, 기력 좋은 신비 손이 우기와 현지인 투메 바여라는 다람쥐처럼 쪼르르 화산을 올랐다. 뒤에 남은 사람은 야호와 나뿐이었다.
핑계를 살짝 대자면, 우리 신발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최대한 짐을 줄이자는 일념하에 짐을 싼 우리. 내가 신은 신발은 고무줄이 쭉쭉 늘어나는 츄바스코 샌들이었고, 야호가 신은 신발은 곧 끊어질 것만 같은 크록스 단선 샌들이었다. 트래킹 일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낮은 화산이라고 해서 동네 동산을 생각했던 게 패인이었다. 화산석이 부스러져 거친 자갈이 된 땅을 딛고 산을 오르기에 우리의 너덜한 샌들은 적절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체력이 달리던 우리는 동행들을 저 멀리 보내두고 천천히 화산을 올랐다.
화산 트래킹 코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비가 오기 직전이라 방문객이 적었을 수 있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다닌 곳 중 가장 사람이 많았다. 한국인보다 서양인이 많았고, 관광객만큼이나 몽골 현지인이 많았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으니, 산을 오르고 있는데도 내가 해외에 여행을 온 것이라는 게 크게 실감이 났다.
사람이 많으면 대화를 할 기회도 많다. 허르거 화산을 오르며, 다양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대부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으로 대화를 열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두 팀을 소개한다. (단, 그분들의 국적은 기억이 흐릿하다. 산에 오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트래킹과 대화를 멀티태스킹할 수 없었던 나를 이해해 주시기를…!)
(1) 홍콩 혹은 상하이 노부부
우리 엄마 아빠 뻘의 노부부 두 분이 같이 손을 잡고 화산을 오르고 계셨다. 내 신발을 보시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셔서, 어깨를 으쓱하며 화답했다. 자연스레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이야기하자 두 분은 눈에 띄게 반가워하셨다. ‘안녕하세요.’ 인사도 해주셨다. 알고 보니 일 때문에 한국에 3년 정도 사셨다고. 언제 와보셨냐고 물어보니까 1996년도라고 했다. 제가 그때 태어났어요! 하니까 내 신발을 봤을 때보다 더 놀라셨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하는 표정이었다.
(2) 오스트리아 혹은 폴란드에서 온 또래 여성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한 여성이었다. 내 또래가 한국에 관심이 있으면 보통 아이돌이나 드라마 때문이었기에, 왜 한국에 오고 싶냐고 물으면서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약간 고민을 했다. 내가 아이돌이나 드라마를 그리 크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돌아온 이유는 내 예상 밖이었다. 한국이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한국에 30년 가까이 살아온 나조차 잊고 있던 이유였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발아래 자갈은 더 고와졌다. 발이 미끌리거나 헛디딜 때도 있었다. 경사도 꽤나 가팔라져서, 어떤 구간에서는 앞에 가던 사람의 뒤꿈치가 내 시선 앞에 있을 때도 있었다.
내 앞에 가던 아기는 내 정강이 높이보다 키가 살짝 더 클까 하는 몽골 현지 아기였는데, 경사가 가팔라지자 손까지 받치고 네 발로 산을 올랐다. 신기한 건, 그 아가가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장 흔한 구멍 숭숭 난, 슬리퍼로도 샌들로도 신을 수 있는 크록스. 심지어 그 크록스는 아가 발보다 컸다. 자세히 보니 아가 엄마와 아빠도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야, 여기 크록스 신은 사람 진짜 많아.”
야호의 말에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 그랬다. 크록스 신은 사람들은 다 몽골인이었다. 할아버지도 걸음마를 갓 뗀 것 같은 아기도 성큼성큼 화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몽골 사람들의 앞마당이었구나.
아가가 신고 있던 크록스가 내 눈앞에서 벗겨졌다. 아가가 벗겨진 신발을 다시 신으려고 맨 땅을 딛으려 하길래, 내가 발에 신발을 신겨 줬다. 아기의 크록스는 내 손보다도 작았다. 아기 엄마는 우리를 지켜보다가 천사처럼 웃었다. 아가랑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허르거 화산의 정상은 당연하게도 분화구였다. 우리 동행들은 우리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졌다고 했다. 거짓말.
사화산이라 그런지, 분화구 안도 우리가 올라왔던 길처럼 검은 모래와 자갈로 가득 차 있었다. 분화구 안에도 로프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있어 ‘저길 누가 내려가는 거야?’ 했는데 몽골 사람들은 내려가더라. 대단한 체력이었다. 우리는 관광객이라는 신분에 충실하고자, 정상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분화구 안도 나오지 않고, 다들 피로한 얼굴이었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다.
하산하는 길, 나와 야호는 역시나 뒤쳐졌다. 몽골인과 외국인이 다채롭게 섞인 길을 걸으며, 우리는 정말 우리가 관광지에 와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넓은 허허벌판 초원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모를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산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몽골이 조금 더 소중해졌다. 그러니까, 이렇게 광활한 자연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걷는 모습이 좋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괜히 팔을 흔들흔들하며 걸었다. 손끝에 찬 바람이 만져졌다.
얼마나 내려갔을 까, 각진 Y자로 뻗은 나무가 나타났다. 관광객들은 모두 나무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 동행들도 다 그 앞에 있었다. 꺄르르 거리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보다 나이가 그리 많이 어리지 않은데도 괜히 풋풋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손이가 찍는 브이로그에 넣기 딱 좋은 장면이라 나는 핸드폰을 들어 촬영을 시작했다. 그사이 야호는 잠시 꽃을 보러 다녀왔다.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테니 설명하자면, 꽃이나 말을 보러 다녀온다는 건 몽골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말이다.
사라진 야호는 저 멀리 사진을 찍던 신비와 손이와 우기가 나를 발견한 후에도, 투메가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손짓한 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몇 분 후 나타난 야호는 대형 뉴스가 있다고 파닥거리며 나타났다. 야! 위아 더 월드다!
꽃 보기 좋은 곳을 찾다가 괜찮은 곳을 찾았는데, 그곳에 세상 모든 사람들의 꽃이 다 모여 있었다고 했다.
감성이 와장창 깨져버리고 만 나는 차까지 열심히 뛰었다. 다음에 몽골에 오면 꼭 운동화를 가져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