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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Mar 04. 2021

치앙마이행 이층 침대의 숨막히는 분위기

#3 마주치는 눈빛에서 읽히는 외국인 바이브를 믿지 마


 툭, 터놓고 말하는 게 더 쉬울 때가 있다.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서 최대한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분위기는 얼마나 숨 막히던지! 침대가 펼쳐지기 전후 20분은 내가 기차 여행에서 절대 기대치 않았던 정적 그 자체였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결정한 내가 방콕에 일주일 머물게 된 이유는 순전히 낭만 때문이었다. 덜컹이는 기차, 간이침대에 앉아 창문을 내다보는 여행의 로망! 여행 결심이 늦기도 했지만, 워낙 인기가 많은 기차였던 터라 방콕에 일주일 머무르고서야 침대칸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 타고 자면 잘 못 잘 텐데."

 "야간열차 침대 더럽대!"

 "누가 물건 훔쳐가면 어떡해?"

 야간 침대 열차에 대한 주변의 우려는 많았지만, 그런 걸 신경 썼더라면 야간열차를 타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야간열차를 타 보니 그 걱정은 기우였다.


 2층 침대 구조로 기차 창문에 나란히 위아래 양쪽으로 설치된 빨간 침대들은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역무원들은 돌아다니며 새 시트와 이불, 베개를 나눠주고 다녔다. 침대마다 커튼도 달려있어서 야간열차는 마치 달리는 호스텔 아니, 과장 조금 보태서 캡슐 호텔 같았다. 달리는 기차? 그런 건 걱정도 아니었다. 차멀미를 하더라도 잠은 잘 자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숨 막히는 어색함! 마치 진공 같은 케미. 침대가 펼쳐지기 전까지는 위층과 아래층을 사용하는 사람이 1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1인석에 단둘이 마주 앉아 있어야 했다. 말을 터도 되는가.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그 사람과 슬쩍슬쩍 시선이 섞일 때마다 터지는 복장과 답답의 콜라보. 누구도 먼저 말을 걸 수도, 말을 받아줄 수도 없는 그곳은 소리 없는 아비규환이었다.


 기차의 침대는 모두 접이식이었다. 기차에 올랐을 때, 이층 침대의 위층은 아직 접혀서 천장과 붙어 있었고 아래층은 두 쪽으로 나뉘어 의자로 접혀 있었다. 그와 내가 마주 볼 운명이었던 거지.

 상체만 한 백팩을 들고 온 나와, 몸집만 한 캐리어를 들고 온 그는 기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1인석 아래에 짐을 넣기 위해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혔다. 최대한 서로를 안 건드리고 움직이기 위해 꿈틀대다가 툭, 건드리면 쏘리! 서로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떤 말을 쓰는지 모를 때에는 영어가 아무래도 세계 룰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여행에서는 이렇게 짧게 스친 사람과 대화하는 게 묘미일 수 있지. 하지만 방콕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사람으로 복잡한 도심지역과 짜뚜짝에서 보내고 난 후, 그리고 웬만한 시장통 부럽지 않은 후알람퐁 역에서의 긴 대기를 버티면서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단 말이지. 백번 양보해서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편하게 이야기했을 수도 있겠지만, 사교성+약간의 두뇌 회전까지 필요한 영어를 써야 한다면 그다지….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언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는 그분이 99.9% 중국인, 적어도 중어권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짧게 통화하는 언어들이 다 중국어였으니까. 그렇다면 우리 사이에 오갈 수 있는 것은 눈빛뿐이겠어요. 비록 외국에 왔지만 외국어로 소통할 기력이 제겐 남아있지 않아요. 그렇게 조용하고 어색한 기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기차여행의 묘미는 도시락!이다 싶어 기차 시간에 맞춰 밖에서 도시락이랑 간식도 사 왔는데, 앞에 사람이 있으니까 눈치가 보이더라. 여럿이 있는, 넷 정도만 같이 앉아 있었어도 눈치가 덜했을 텐데 단둘이 마주 보고 있으니까 주섬주섬 뭘 꺼내먹기도 민망했다. 그렇다고 침대가 펴지면 올라가서 먹기도 그렇고.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그렇고! 그래도 따끈한 도시락을 다음날까지 두기는 그래서 먹기는 그랬다. 눈치는 보이고 마음은 무거워도 도시락은 맛있었다. 호다닥 먹고 치우니까 타이밍 좋게 역무원들이 침대를 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날 밤은 침대 위로 도망가서 마음껏 낭만을 만끽했지!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는데, 치앙마이가 가까워졌던지 역무원이 침대를 접기 시작했다. 다시 어색한 모먼트가 이어졌다. 그분은 짧은 통화를 몇 번 더 하고, 나는 그 맞은편에서 어제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를 마시던 차였다. 그때 덜컹, 하고 기차가 흔들렸다.


 "어머나."

 나도 모르게 놀라서 말이 나왔다. 치앙마이행 야간열차에서의 첫마디였다. 몇십 초 아까 같은 정적이 있었을까, 이번엔 맞은편 그분이 입을 열었다.

 "한국분이세요?"

 "오… 네!"

 그렇게 기차에서 내리기 10분 전, 한국어 대화가 시작되었다.


 둘 다 서로를 외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코미디였다. 나는 그가 중국어로 통화해서 중국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정말 중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 관광을 온 것이라고 했다. 이제야 그 몸통만 한 삼십 인치 캐리어가 이해가 갔다. 그는 내가 당연히 외국에서 온 여행객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내가 좀 외국인처럼 생겼으니까.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게 피곤한 거랑은 별개로 한국 사람이 그렇게 반갑게 인사하니까 덩달아 반가워지더라. 한국인을 본지 오래되었다던 그분은 치앙마이에서 어디서 지낼지, 어디로 여행을 다닐지까지 소소한 이야기를 다 꺼내놓으셨다. 역시 반가움은 사람을 신나게 해!


 그렇게 그 날의 홀로 계획도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태국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기 돼지 삼 형제 중 셋째 돼지의 벽돌집처럼 단단하던 나 홀로 여행 계획은 첫날에 와장창 무너진 이후로는 첫째 돼지의 지푸라기 집처럼 얼기설기 높아졌으니, 그리 속상한 일은 아니었다. 단단한 집은 늑대의 폭풍 같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기도 어려우니. 어쩌면 나는 여기서의 인간관계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사람을 대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져 있었다.


 '진작 대화할걸!'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든 생각이었다. 그가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었더라도, 이 생각은 같았을 거다. 라쿤이 솜사탕 씻는 영상에서 솜사탕 녹아내리듯, 우리 사이를 채우고 있던 진공(진공은 텅 비어있는 것이니 채우고 있다고 표현하기 그렇지만.)이 원래 없던 것이었던 양 녹아내렸다. 홀로보다 편한 함께. 이 말은 몇 년을 함께한 친구나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나 보다.



+


 그는 치앙마이 역에 도착하면 함께 썽태우를 타자고 권유해줬다. 역과 올드타운의 내 숙소가 그리 멀 줄 몰랐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는 님만해민 나는 올드타운으로 숙소의 위치는 달랐지만, 덕분에 그와 더 이야기할 수 있었다. 썽태우에서 내리기 전, 그가 경고했다.

 "요즘 우한에서 폐렴 돌고 있잖아요. 조심하세요. 저도 비행기 겨우 탔어요."

 태국 도착과 동시에 반도와의 연을 끊다시피 하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 코로나 소식이었다.


* 정식 명칭은 코로나 19지만, 그 당시의 기억을 살려 그때 부르던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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