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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28. 2022

43. 감사합니다

하나의 선언

오늘 버스에서 한 여자가 내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우렁찬 목소리였다. 버스에 탄 승객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여자가 떠난 후에도 귓가에 감사하다는 소리가 맴돌았다. 운전기사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선언처럼 들렸다. 저 여자의 '감사합니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무엇에 감사하고 있는 걸까?


1. 운전기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2. 값싼 가격에 이동할 수 있께 해주는 공공교통체계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3.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 버스를 타고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사 인사 외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 외의 다른 기호를 나타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여자는 자신이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가 의도한 바와 달리 내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했다. 여자는 과시적이었다. 자신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운전 기사와 승객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가 내게는 하나의 과시적 기호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식당에서 서빙을 받을 때 외치는 내 "감사합니다"를 떠올렸다. 나는 분명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감사를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한 가지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던 속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했다. 이는 내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하나의 선언이었다.


'선언'에 관해 생각한다. 선언은 행동의 1차적 의미를 뛰어넘는 곳에 존재한다. 처음 본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1차적으로 반가움의 표시를 내보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친근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조용히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반가움을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선언'에 관해 생각해 본다. 면접관은 면접에서 면접자의 무엇을 보고 판단할까? 그들은 면접자의 말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면접관은 자기 밑에 두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살펴본다. 말만으로는 그 사람을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어른들은 자신이 나이를 먹은 만큼 한눈에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면접자들의 말에 숨겨진 '선언'을 본다. 오만한 생각이지만, 사람을 보는 데 있어 영 틀린 판단은 아니다.


나는 면접장에 들어가서 어떤 '선언'을 해야 할까?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의 기호는 무엇일까? 당황스러운 질문에도 허허 웃으며 넘기는 태도를 취해야하는 걸까, 날카롭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태도를 취해야 할까? 아니면, 이런 의도를 담은 태도가 그들의 눈에 꿰뚫려 오히려 아니꼽게 보일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면접장에서 어떤 선언을 해야할지 고민해 봐야 겠다. 그놈의 태도, 태도가 항상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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