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드 Aug 10. 2023

공황

패닉어택

갑작스럽게 공황이 왔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책을 읽을 수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심장이 진정되길 바랐지만 나는 회사였다. 복식 호흡을 시도했다. 상담하면서 배운 방법이다. 


나는 상담사 건너편에 앉아서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엎드려 있었다. 말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아 읊조리 듯 말했다. 평소 친절한 모습만 보이던 상담사가 갑자기 단호하게 말했다. "똑바로 앉아요." 나는 유약한 사람이 그렇듯이 화들짝 놀라 똑바로 앉았다. 상담사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고 더 이상 내뱉을 수 없을 때까지 숨을 뱉으라고 했다. 그렇게 10번을 했더니 나는 겨우 똑바로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상담사는 앞으로 너무 힘들 때는 이런 식으로 5번 호흡하라고 말했다. 


나는 몸을 가눌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복식 호흡을 했다.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게 금방 괜찮아지면 공황이라고 하기 힘들 것이다. 복식 호흡 조차 나를 구하지 못하면 나는 글을 쓴다. 나의 손 끝에 나의 모든 불안을 담는다. 지금이 그렇다.


공황에 대해 말해볼까? 심장이며 호흡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신체적 증상이다. 정신적 증상은 우울증과 불안증의 극대화다. 나는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심리를 글로 쓴 뒤, 그들에게 전염이라도 된 듯 우울증과 불안증을 안게 되었다. 인터뷰할 당시 나에게 우울과 불안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었다. 내가 물어보면 그들은 대체로 "잘 모르겠다"고 했고, 집요하게 파고 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느낌일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우울증을 나타내는 정확한 말이다. 나는 상담을 받으면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하던 말은 "막막해요"였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죽을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버스에 치여 죽는 상상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되내였다. 우울증 참고도서로 활용했던 <한낮의 우울>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과거의 괜찮았던 모습은 기억나지 않고, 미래에 괜찮아진 모습도 상상가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고 주변에는 암흑뿐이다. 그리고 현재 이 상태가 끝없이 지속될 것만 같다.


공황은 이러한 우울증과 불안증의 극대화된 상태다. 공황 장애 환자들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흔히 지하철이나 길거리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공황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주변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아서 나는 혼자가 아닌데도 나는  내면 깊숙이, 뼛속까지 혼자라가는 고독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고독감은 공포가 되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믿음을 상실한다. 살 수 없다고 단단히 믿는 사람이 숨을 편히 쉴 수 있을리 없다.


나는 최근 경미한 거절을 당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원인인 것 같다. 상담에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내 인생 테마 중 하나였다. 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아주 작은 순간에도 반응하며 비맞은 강아지처럼 덜덜 떨었다. 그 작은 순간은 내게 심각한 타상을 입혔던 완전한 거절의 기억으로 나를 이끌었고, 그러면 나는 또다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상담사가 내 경험에 자꾸 라벨을 붙이고, 그 원인을 어린시절의 경험에서 찾으려는 것에 항상 거부감을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어린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와 똑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라벨링은 공포를 가라앉혀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공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공포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거기에 작은 원인이라도 부여하면 공포는 대상을 향한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 그러니까 나는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공포에 억눌리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자기기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