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학시절, K와 함께 한 아트테라피
조용히 치료실로 들어와 간단히 인사를 건네며 늘 앉던 자리에 앉은 K.
우리의 대화는 그의 반응과 그의 감정대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흘러요. 유난히 이 날은 K의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미리 선생님께 전해 들었지만, 학습에 뒤쳐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불안해했다고 해요. 경미한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그는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고, 일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어요.
영국은 1982년부터 일반아이들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한 교실에서 수업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었어요. 학교 안에서 의료기관을 통해 정서나 발달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진단하고, 학교와 의료계가 연계해서 학교 안에서 수업을 받으면서도, 아트테라피나 언어치료, 드라마 테라피 (연극치료), 또는 놀이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교사들과 SENCO(Special Educational Needs and/or Disabilities Coordinator)*선생님, 그리고 치료사들은, 이런 아이들을 함께 관리하고 어떻게 기본적인 배움은 일반 아이들과 차이가 나지 않게 하면서 아이의 힘든 부분을 도와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협업해요. 필요하다면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위해서 해당 아이 전담 학습 보조 교사를 교실에 투입하기도 하고요(이는 조금씩 다르기도 하겠지만 한국도 시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K는 제 아트테라피 슈퍼바이저(감독관)를 통해서 저와 만났어요. 5번째 아트테라피를 했고요. 학교생활은 제법 즐겁게 하는가 싶지만, 집에 돌아가 밤이 되면 유난히 불안해했어요. 학교에 와서도 학습 부담감 때문에 불안해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잘하다가도 시간을 두고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기에 시작한 세션이었어요.
밤의 어떤 점이 그를 힘들게 하는지 물어봤어요. 그에게 있어 어둠이 오면 낮이 끝났다는 뜻이고, 그것은 더 이상 학습을 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대요. 뜨는 해와 지는 해에도 학습부진을 걱정하는 시기라니요. 얼마나 애처롭게 느껴졌는지요. 그는 주말도 학교와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며, 집에서도 뒤처진 학습을 만회하려 노력한다고 했어요.
나- "지난 한 주는 어떻게 지냈어?"
K- "...... 길었어요. 한 주가."
K는 두 손으로 연신 얼굴과 짧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어요. 저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어요. 그가 불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이 안전한 공간에서 충분히 자신만의 고요를 갖도록요.
한참 뒤, K는 준비가 됐다는 듯 고개를 들고 허리를 세워 앉았어요. 천천히 종이와 물감을 가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빠르며 섬세해요. K는 두세 자루의 붓을 가지고 각각 다른 색을 묻혀, 새를 그리곤 했어요. 이번에 그리는 건, 노란색의 깃털과 주황색꼬리를 가진 밝은 새예요. 그런데 새 양쪽에 검은 선 두 개가 등장하더니, 이내 그 노란 새 아래쪽은 주황색으로 칠해져요.
용암에 끓는 화산 속, 노란 새가 완성되었어요. K는 붓을 물통에 꽂더니, 두 손을 모아서 조용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어요.
저는 조용히 그림에 대해 물었어요.
"새 한 마리가 화산 속에 있네?!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된 거야?"
그러자, K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화산 안에 사는 노란 새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대요. 용암 새들은 어릴 때는 화산 안에서 살지만, 성장하면서 독립하고 더 큰 화산으로 이동하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서부터 이 새는 화산 주변을 날아다닌대요. 새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것은 물이라고 해요.
저는 왠지 그 새가 K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자의식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새가 자신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왠지 물어보면 부정하거나,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놓치게 될 것만 같았거든요. 그저 속으로 그 새가 그 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K가 느낄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어요.
노란 새는 밤에도 밝은 곳에 있어요. 용암이 뜨거운 열도 뿜어내지만, 밝은 빛을 주기도 하거든요. 마치 K가 공부를 하는 '밝은'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았지요. 빛은 그에게 뒤처지는 학습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게도 하지만, 한편 노력을 하게 만드는 불편한 안정감을 주기도 하거든요. 그의 마음을 아는 제가 그 새를 그렇게 애처롭게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보이는 건지, 새는 명랑하게 밝은 느낌을 주지만, 왠지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였어요. 하루 종일 나는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와 편안하게 쉬면 좋으련만, 발을 슬쩍 내려놓을 수 있는 받침 하나가 있을 뿐, 여전히 용암 때문에 어디에도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없어 보였으니까요. 오히려 바깥이 쉴 수 있는 장소와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를 주는 곳일지도 모르죠 (물론, 바깥 상황도 어떤 예상치 못한 불안전한 요소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마치 K가 집과 사회, 그리고 마음과 몸에서 겪는 안팎의 성장통과 부단한 날갯짓이 필수적인 상황의 부담감을 상징화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안과 밖, 그 어디에서도 온전히 쉴 수 없는 그 마음을 대신 읽어주자, K는 노란 새가 '솔직히 폭력적인 환경'에 산다고 했어요. 용암은 항상 폭발하고 돌이 떨어지는 환경이라고요. 그래도 새는 괜찮다고 느낀대요. 그들은 화산을 벗어나기 위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장함에 따라 더 격렬한 활동 중인 화산에서 살 것이기 때문에요. 어쩌면 K는 채 경험하지 않아도 어딜 가나 경쟁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환경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어요.
저는 불현듯 K가 말한 새의 두려움에 대해 물어보았어요. 환경의 척박함과 가혹함의 두려움보다, '물'이라는 명확한 두려움의 존재를 알아보고 싶었고요. '새가 물에서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물어보았어요. 그는 한참 변화와 두려움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 있는 듯했어요.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불과 대비되는 존재인 물은 비나 홍수, 슬픔에 의한 눈물처럼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또 다른 자극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저는 새가 불안해질 상황이 되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느냐고 물었어요. K는 때때로 그렇지만 새는 결국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해하고 싶어 한다고 했어요. 이 답변에 대해 드러난 용감한 태도, 또 그 이면에 도움을 더 청하고 싶지만 어느 정도 자라났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마음도 생각해 보았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불안과 걱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워할 때가 있잖아요. 어쩌면 두려움과 불안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인정하고 보이는 것은 꽤 용감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어떤 어른들 보다도, 13살 아이인 K의 마음이 정말 귀하더라고요. 그에게 어떤 변화가 올 것을 알고 있으며 도망치지 않는 이상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치 화산 속에 있지만, 화산 안이 위험해지거나 새로운 어딘가로 독립할 때가 되면 언제든 자신은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요.
세션을 정리할 시간이 될 때쯤, 그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전략이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그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림을 그린다고 했어요. 저는 평소 불안과 걱정이 느껴질 때, 집에서 불안과 걱정을 지금 화산 속 새 처럼 그려보고, 그것을 다음 있을 세션에 가져와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요. 불안이란, 가지고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소중한 나의 감정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던 날. 그에게는 얼마든지 불안과 두려움을 잠식시킬 수 있는 날개 같은 힘이 있다는 것을 보았던 날이었어요.
가끔 저는 아트테라피를 통해 아이들을 진로교육할 때, 이 세션을 떠올려요. 요즘 학업, 진학스트레스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아이들의 현실이 애처롭게 느껴질 때 특히요. 그래서 오늘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들을 다루어내지 못하고 그저 모든 에너지를 공부에 쏟는 아이들을 만나며 마음을 잡아봅니다. 저를 만나는 한 시간만큼은 자신 안에 있는 힘을 믿고, 느끼고 표현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K의 그림, 화산속 노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