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향을 존중하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
무슨 색깔 좋아하세요? 아마 다들 좋아하는 색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씩은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색의 물건을 내 곁에 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전환하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우연한 경험으로 어떤 색을 좋아하게 기도 하지만, 싫어하게 되기도 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노란색이에요. 해가 질 무렵 서서히 세상이 따뜻하게 물드는 진한 노란색이요.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게 제가 좋아하는 색을 말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저는 한참 그러지 못했어요. 어릴 적, 누가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면 대답하던 건, 빨간색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빨강을 좋아한 적이 없어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건 정말 작은 일 하나 때문이었어요.
엄마와 친한 동네 이모님이 동네 문구점을 같이 지나면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주겠다고 하셨어요. 얼른 좋아 들어간 곳에서 한 손에 잡히는 고무공을 봤어요. 평소 잘 가지고 놀지도 않았는데, 그냥 이거 저거 따지지 않고 한 번에 찾을 무언가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선택할 수 있던 색깔은 빨간색과 노란색. 자연스럽게 노란 공을 집으면서 '이거요'라고 말하려던 찰나, 이모님이 웃으면서 그러시더라고요.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욕심이 많다던데.”라고요. 표정과 어조 그리고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았어요. 정말 ‘그냥’ 하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그 말이 왠지 제게는 크게 마음에 박히더라고요. 마치 나의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제 머릿속 회로는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은 나쁜 사람. 그러니까,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흘렀어요. 그 공식이 한참 마음에 남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크면서는 누가 어떤 색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의식적으로 다른 색을 선택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 엄마가 된 제가 큰 아이에게 물었어요.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큰 아이가 생각하지도 않고 ‘노란색!’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왜 그 색이 좋냐고 물으니, 엄마와 함께 처음 갔던 전시에서 노란색을 쓴 그림이 너무 예뻤다는 거예요. 그 물음 뒤에 제 마음속에 노란색은 ‘추억’, ‘ 설렘', ‘따뜻함'으로 바뀌어 기억되기 시작했어요. 아들과의 보낸 의미 있는 시간이 담겨있는데, 제가 좋아하기까지 하는 색이니 마음껏 사랑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 아이와 함께 큰 종이 한 장을 크레파스에 있는 모든 노란색으로 가득 칠했어요. 누군가에게는 노란색 종이 한 장으로 보이겠지만, 아이와 저에게는 또 다른 추억, 서로의 애정이 담긴 우리만의 암호가 들어있는 상징적인 그림으로 기억되겠지요.
세상의 색깔들은 고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눈을 통해 뇌로 전달된 색의 파장이 색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게 해요. 그 기억은 어떤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요. 그 감정을 느낄 때 신체적인 변화까지 이르게 해요. 공간디렉터인 최고요의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에는, 기분을 전환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집의 가장 넓은 면적의 색을 바꾸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커튼이나 침대 시트의 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분위기가 바뀌고, 새로운 공간처럼 인식할 만큼 기분에 큰 영향을 준다고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혹은 선택적으로 좋아하는 색의 물건을 구입하고, 애장 해요. 이것은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하늘 색깔은 그런 색이 아니잖아’, ‘남자가 무슨 이런 색깔이야', ‘그건 나이 들어 보이는 색이잖아' 하던 누군가의 말 때문에 오랜 시간 자유롭지 못했던 나의 취향을 꺼내주고, 나 다운 일상을 그 색깔로 물들여 가보는 거예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지금 바로 내가 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크기의 종이에, 나만의 취향을 듬뿍 반영한 색깔을 가득 칠해보며, 내 마음부터 채워보세요.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우고 나면, 마음속에 있던 나만의 취향을 꺼내는 것이 어느덧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더 넓게, 그리고 더 많이 나를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