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을 방문하였다. 그의 작품인 ‘동백꽃’, ‘봄 봄’ 등의 단편소설을 오래전에 읽긴 했지만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작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었다.
김유정 문학촌은 작가의 문학적 유산을 기리기 위해 2002년도에 생가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과 초가로 된 집들이 세워졌고 각종 전시나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건물들 사이에는 길을 따라 작가의 작품들이 설명된 게시판들이 있었다. 작품 ‘솥’에서 나오는 장면이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전시된 것이 눈에 띄었다. 김유정 기념 전시관과 김유정 이야기 집에는 김유정 작가의 생애와 작품 및 유물, 영상들을 볼 수 있다.
김유정(1908~1937)은 1930년대 현대 단편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놀랍게도 작품 활동은 1933년부터 시작하여 1937년 사망하기 전까지 4년 동안이 전부이다. 실질적인 등단은 1935년이었으니 등단부터 시작하면 2년에 불과하다. 그는 사망하기 전 가난에 힘들어했고 폐결핵 등 지병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그는 소설 30편, 수필 12편, 일기 6편, 번역 소설 2편을 남겼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감히 흉내 내기 힘든 작가의 의지를 생각해 보며 깊이 감동한다. 그의 사후 1996년까지 그에 대한 논문이 무려 360여 편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짧았던 기간에 쓴 글이 문학사적으로도 가치가 있었다고 하니 실로 경외의 맘이 든다. 그의 마지막 4년은 삶에서 가장 찬란한 절정의 꽃을 피운 시간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강원도 춘천의 산촌에 있는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는 부모님이 부유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이 재산을 탕진하자 굴곡지고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늑막염에 걸렸으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폐결핵으로 진행되었다. 병 치료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와 야학을 운영하며 농촌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광산을 돌며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했다. 불안정한 생활은 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에 대한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는 밤마다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은 채 소설을 썼다. 이미 쇠약해진 몸으로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를 떨쳐버리려고 필사적으로 투쟁했다. 그는 죽기 전 친구인 안필승에게 편지를 썼다. “돈이 필요하다. 닭 30마리를 고아 먹겠다. 살모사, 구렁이 100수를 먹을 것이다. 돈, 돈, 슬픈 일이다.” 당시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편지를 썼을까!.
그래도 그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삶에서 경험한 것들을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사후에 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모옌(2012.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은 <김유정은 한국 문학의 천재이며 창작이나 삶, 모두가 나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억압받는 민중이 어느 정도까지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는가. 당대의 이러한 문제를 가장 생생히 파헤친 작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였다.
프랑스 르 몽드 지는 <김유정은 그저 몇 단어로 겨울의 찬바람, 한여름의 땀방울, 오월의 향긋한 꽃내음을 우리에게 전해줄 줄 아는 작가다>라고 하였다.
김유정 작가는 일제의 수탈과 억압 때문에 가난의 사슬에서 신음하는 민중과 이리저리 떠도는 인간 유형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하지만 작중 인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해학적이고 풍자가 있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김유정 문학촌을 나와 김유정 작품의 배경이 된 실레마을 이야기 길을 걸으며 작가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29살의 나이에 작가는 어떻게 그런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순탄치 않은 삶 속에서도 인간에 대해 연민과 사랑을 잃지 않은 그를 존경한다.
김유정역은 경춘선에 있는 강촌과 남춘천 사이의 역이다. 원래는 ‘신남역’이었으나 2002년 김유정 문학촌이 생기고 난 후 2004년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람 이름을 딴 역이라고 하니 대단하다. 현재는 새로 지은 ‘신 김유정역’이 있고 ‘옛 김유정역’은 폐쇄하고 관광지로 만들었다. 더는 달리지 못하는 ‘기차’는 페인트로 깨끗이 단장되었다. 기차 안에는 의자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한쪽 공간에는 북 카페가 만들어져 안으로 들어가서 쉴 수도 있었다.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김유정문학촌, 실레이야기길, 김유정역을 천천히 보고 걷고 생각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갔다. 날씨가 화창하고 햇볕도 따뜻해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 김유정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이 가장 좋았다. 차분히 시간을 가지고 그의 작품들을 숙독하려 한다. 작품을 통해서 작가를 더깊이 이해하고 싶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과 노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기뻤지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목적과 주제설정이 여전히 어렵다. 더 나아가기 위해선 기본 철학과 관점이어느 정도 명료하게 정리될 필요를 느낀다.
작가가 남긴 말을 되새겨본다.
“나는 비로소 나를 위하여 가야 할 길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길이 얼마나 멀지 나는 그걸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그 길을 완전히 걷고 그날까지 나의 몸과 생명이 결코 꺾임이 없을 것을 굳게 믿는다.-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