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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꿀 Jul 22. 2020

이탈리아 할머니의 손맛

이만한 원조가 있을까, 만토바의 호박만두 Tortelli di zucca

나와 파올라&알레산드로는, 친구보다 친구 부모님과 더 친해져버린 그런사이다. 이탈리아 북부, 곤자가 Gonzaga 가문으로 유명한 도시 만토바 토박이신 두분은 젊은 시절에는 이탈리아 전역을 왔다갔다 하던 일을 하시다 스무해전에 다시 만토바로 돌아와 쭉 살고 계시다. 


나는 로마에서 이탈리아 북부에 갈일이 생길때면 가는 길에 만토바에 들려 두분께 밥을 얻어먹고는 한다. 요리는 항상 알레산드로 담당인데 어느날은, 꽤나 독특한 점심식사를 했다. 


그날도 며칠전 파올라&알레산드로에게 가는길에 들린다고 하니 무조건 점심시간에 맞춰오라는 지시를 받고 별 생각없이 빵집에서 산 쿠키와 케이크를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이게 얼마만이냐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들어간 집에는 파올라의 어머니, 알레산드로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가족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난처하고 불편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사실 이상하게도 이탈리아에서는 그닥 어색하지도 이상할 것도 없는 조합이다. 그러니까 나 (파올라&알레산드로의 아들의 동양인 친구), 파올라&알레산드로 (내 친구의 부모님), 이다 (파올라의 어머니), 그리고 알레산드로의 아버지&어머니. 


평일 주말 상관없이 자주 이렇게 모여서 수다와 점심을 하시는 것 같은데 오늘은 나까지 합세하였다. 여든이 넘으신 어르신들인데 사돈과 장모, 시어머니, 시아버지같은 관계와 사이없이 편하고 즐겁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흐르면 똑같지는 않지만 다 비슷해지는 것이 사실인가보다 싶었다.

 

가족들은 나를 빼고 모두 만토바가 고향이다. 알레산드로는 젊은 시절 만토바를 떠나 돌고돌고돌아 결국에는 다시 만토바로 돌아온 것이 필연 운명이라며 만토바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사이 이다 (파올라의 어머니) 할머니는 나를 주방으로 불러 Tortelli di zucca 호박을 넣어만든 또르뗄리를 구경시켜 주셨다. 본인이 직접 빚어서 만들었다며 만토바에 오면 당연히 이건 먹어야 한다시며. 


네모난 모양으로 만드신 것 (라비올리라고 부르는) , 작은 만두모양으로 만드신 것 (본래의 또르뗄리) , 내 눈에는 손톱만해 보이는 더 작은 만두모양으로 만드신 것 (또르뗄리니 Tortellini) 이렇게 세 종류 모양의 파스타가 주방에 펼쳐져있었다. 가족들은 이다 할머니의 호박 또르뗄리는 무조건 보증된 맛이라면서 할머니의 손맛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다. 고품질 호박의 고향인 만토바에서 만토바 호박 (Zucca mantovana) 으로, 만토바 토박이 할머니가 반세기도 훨씬 넘는 세월동안 만드신 호박 또르뗄리, 이보다 원조인 것이 있을까 싶었다. 


토마토소스를 살짝 묻힌 달달한 호박 토르텔리 한접시는 없어지는 게 아쉬울만큼 맛있었다. 토마토소스는 듬뿍이 아니라, 파스타 겉면에 살짝 묻힐 정도로만 곁들여 파스타의 맛은 살아나는 동시에 단맛은 다시 토마토소스가 중화시켜줬다. 그리고 그렇게 맛있는 음식과 유쾌한 만토바사람들까지. 

그날도 원래 떠나려던 시간보다 한참을 지나서야 만토바를 떠나왔다. 이다 할머니의 진한 호박 또르뗄리의 여운을 입에 묻히고. 


사진출처 : Photo by Yoav Azi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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