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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꿀 Jul 26. 2020

이토록 성게, Ricci di mare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 성게잡아본적 있냐구요

여름날, 바다와 산 중에 어디가 더 좋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열번 중 여덟 번은 산이라고 대답해왔다. 바다의 광활함과 눈에 걸릴 것 없는 풍광은 보자마자 기분까지 시원해질지 몰라도 지대가 높은 산위에 올라가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선선한 공기 속에서 보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무것도 안하는 휴가라면 멀리 수평선만 보이는 이글이글한 태양 밑의 해변보다는 제멋대로 솟아나 지루하지 않는 먼산을 보는 것이 내 취향이라고 믿어왔다.


이런 나의 취향은 이탈리아 사르데냐 Sardegna 섬에 다녀오고나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워낙 사르데냐의 바다가 아름답다는 것은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으나 섬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귀찮다는 핑계로 미뤄왔었다. 매번 여차저차 게으름을 피우며 갈기회를 좀처럼 잡지 않다가, 주변의 몇몇이 모터바이크로 일주일정도 사르데냐를 다녀올까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갈마음이 생겼다. 아마도 그해는 5월부터 못견디게 날이 더웠던 것 같다. 


8월은 극성수기니까 7월초로 날을 잡고 La Maddalena 섬으로 유명한 Costa Smeralda 코스타 스메랄다, 에메랄드 해안가쪽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르데냐의 모든 바다가 아름답지만 특히 터키석빛의 아름다운 바다로는 북부쪽의 코스타 스메랄다와 사르데냐의 주도 Cagliari 칼랴리가 있는 남쪽의 양끝 (Villasimius 와 Sant'Antioco 섬쪽)이 유명하다. 



로마 근처 Civitavecchia 치비타베키아 항구에서 사르데냐 북부 올비아 Olbia 로 가는 배에 바이크를 실었다. 하룻밤 볼것없는 어둠안에서 설레임과 두려움에 뒤치락거리며 몇시간 자고나니 아침새벽에 올비아에 도착해있었다. 사르데냐에 도착했다는 알림처럼 여기저기 보이는 컨테이너에는 'U' 로 끝나는 회사이름들이 적혀있었다. 보통 이탈리아어에는 'U'로 끝나는 단어가 없지만 사르데냐언어는 그렇다. 이탈리아에서 혹시나 만난 이의 성 이름이 'U' 로 끝난다면 분명 조상의 누군가가 사르데냐와 관련된 사람임이 분명할것이다. 


사르데냐는 바다가 아름답지만 물이 부족해 예전부터 누구도 크게 탐하지 않던 땅이다. 덕분에 자연은 야생의 날것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르데냐의 첫인상은 이탈리아의 화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손길이 전혀없어 버려진 땅같은 느낌이 강했다. 건조하고 거친바람과 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소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까지. (사르데냐사람들은 이탈리아 본토에 갈때 '이탈리아에 갔다온다'라고 말할정도다, 한국으로 지차면 제주도사람이 부산에 갈때 '한국에 다녀올게' 라고 말한다고 보면된다) 


일주일동안의 일정은 날을 잘잡았는지 날씨는 뜨거웠고 바닷물은 여전히 찼다. 그러나 너무 더워서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달궈지는 공기에 참지못하고 우리일행은 눈만 뜨면 해변에 가 온종일 해가 질 때까지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바닷빛을 보며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게 현실인지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해안가 코앞에 널려있던 성게들이다. 


티비의 바닷속에서나 보던 성게들인데, 사르데냐는 해안가 코앞에 성게들이 널려있어 그저 신기할 따름이였다. 같이갔던 일행 중에 사르데냐가 고향이신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어렸을 적 해마다 사르데냐에 돌아와 널려있는 성게를 잡아다 레몬을 뿌려 먹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사르데냐 해변의 모레도 가져가면 안된다)


새까만 밤송이같은 성게들은 투명한듯 눈부신 터키색의 바다와 바위주위에 듬성듬성있는 것이 보석을 박아놓은 것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고할까. 


그 이후로 나는 사르데냐의 성게밭과 비현실적인 바다색에 한참을 푹 빠져살았다. 계절을 바꿔가며 사르데냐의 바다를 보러 다녀오곤했다. 그리고 여전히도 늦봄과 초여름이면 거친바람에 실려다니는 사르데냐의 Mirto 미르토꽃 향기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닷물과 까만보석밭의 성게들이 눈에 아른아른거린다.


사진출처 : Photo by Portuguese Gravit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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